이단 헌트의 행복한 은퇴를 기원합니다
'미션 임파서블' 이라는 영화가 있다. 1996년 1편이 개봉한 이후로 무려 27년간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온, 첩보 스릴러의 대표격인 작품이다. 더 놀라운 건 주인공 '이단 헌트' 역을 맡은 탐 크루즈가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것인데, 올해 한국 나이로 62세가 되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제는 액션 대스타가 된 ‘리암 니슨’이 테이큰 1편을 찍을 당시 나이가 57세이니, 헐리웃은 나이에 편견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노년의 액션 스타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병헌, 최민식 등이면 가능하려나. 원빈 씨는 액션 대스타가 되는가 했더니, CF 스타로 만족하시는 듯하고.
아무튼, 미션 임파서블은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가며 인기가 급상승했고, 명실상부 액션 블록버스터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리즈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재미있다. 아, 오우삼이 감독했던 홍콩 영화 느낌의 2편은 제외하자. 2편은 오프닝 시퀀스(그 유명한 절벽씬)가 인상적이어서 '오! 이거 대박일 듯?!'하고 기대가 큰 상태로 영화를 보았으나, 주인공이 달려가는 장면에 하얀 비둘기가 떼로 날아가는 걸 보고 헛웃음이 나왔었지. ’첩혈쌍웅‘인줄.
"흰 비둘기는 순결과 정신을 상징한다.
나에게 흰 비둘기는 신의 메신저다."
- 오우삼
감독님, 곤조가 있으시네요. 그렇죠, 모름지기 예술가에겐 그 정도 근성있는 고집이 필요합니다.
아니, 뭐, 2편도 지금 보니 나쁘지 않다. 단지, 색다르다고 해두자.
아무튼, 그런 미션 임파서블 7편 ‘데드 레코닝’이 개봉했다. 촬영 당시부터 탐 크루즈의 몸을 사리지 않는 스턴트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제 탐 크루즈는 62세가 되었다. 고강도의 스턴트가 포함된 액션영화를 하기엔 많은 편이다. 지금처럼 직접 하늘을 날고, 뛰어 내리며 스턴트를 하다간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아마 이번 편이 탐 크루즈의 마지막 미션 임파서블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인터뷰에서 해리슨 포드를 언급하며 80세까지 찍고 싶다고 했지만, 스턴트 액션이 많은 영화의 특성상, 그건 지켜봐야 하겠다.)
얼마 전에는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이 개봉했었다. 해리슨 포드 옹도 이미 할아버지가 되셨지만, 최선을 다해 연기했고. 나는 인디아나 존스의 팬으로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관람했으며, 그 마지막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대충 젊은 배우를 내세운, 세대 교체를 위한 어설픈 후계자 구도로 마무리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에게 인디아나 존스는 언제까지나 해리슨 포드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히어로들이 하나하나 은퇴하고 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어벤저스 : 엔드게임'을 끝으로 아이언맨에서 은퇴했다. 제임스 본드도 최근 '노 타임 투 다이'로 은퇴. 제이슨 본도 ‘제이슨 본’을 마지막 편으로 은퇴. 인디아나 존스와 이번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까지.
그게 정상이다.
한 세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김훈이 소설 ‘하얼빈’에서 쓴 문장처럼, ‘친숙했던 한 세상이 끝나감’을 느낀다.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난다.
나는 감사하다.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 해준 영화 속 그들에게 고맙다. 내가 힘들 때, 그 영화들에서 많은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그들을 보며, 잠깐이나마 웃고 울었다. 나도 회사에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저 영웅들처럼 열심히 노력해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잘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멋진 선배들을 영화 속에서 찾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회사가 상장해 부자가 되었다고 법인 카드로 양주마시고, 골프치고, 롤렉스에, 포르쉐 뽑는 선배 말고.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후배들을 생각하고 위할줄 아는, 정말 실력있는 선배를 찾던 내 2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뒤돌아보면, 결국 책과 영화만이 답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션 임파서블 속 탐 크루즈의 몸을 사리지 않는 도전이 더욱 와닿았던가보다. 영화 속 이단 헌트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향에 가까운 리더의 모습이기에, 나는 어느 정도 '경외' 혹은 '감동'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탐 크루즈는 얼마전 나의 글에도 비슷한 주제로 등장했었는데, 이쯤되면 광팬 수준인건가. 존경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https://brunch.co.kr/@dontgiveup/224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
예전처럼 풍요로운 영화 캐릭터들의 세상이 다시 올까? 나는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넘쳐나는 SNS, 넷플릭스로 시작하는 다양한 OTT플랫폼까지. 이제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의 낭만이 자리잡을 시대는 지났다. 마치 홍콩 느와르 영화의 붐이 일순간에 사라졌듯,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시리즈물의 명맥이 오프라인 극장에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리부트'라는 이름으로 젊은 배우를 캐스팅하여 다시 1편부터 재촬영이 들어갈 수는 있겠지. 헐리웃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니까. 최근 마블은 아이언하트 라는 이름의 아이언맨 후계자 격인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킨 듯 하지만, 별로 관심은 안간다. 서사도, 고뇌도 없는 뜬금포 캐릭터에서 아무런 매력을 찾지 못했다.
나는 과거 히어로들의 모습이 벌써 그립다.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재의 넋두리 같기도 하군.)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은 2025년 5월 파트 2 개봉을 앞두고 있다. 원래는 2024년 개봉이었으나, 방송 노조 파업으로 인해 제작이 늦춰지는 바람에 1년 뒤로 미뤄졌다고 한다. 지금부터 2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조금 답답하지만, 미션 임파서블 팬으로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드랍 안하고 개봉해주는게 어디냐. 마지막 작품도 혼자 조용히 보러 가서 울컥 하겠지만, 어쩌랴. 멋진 퇴장은 박수받아 마땅하고, 난 그 자리를 혼자 만끽하고 싶다.
부디 멋진 마무리로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길 빈다.
고마웠습니다.
이단 헌트의 행복한 은퇴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