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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an 29. 2024

야, 휴가 내고 낮술이나 마시자


카톡이 왔다.

"야, 휴가 내고 모여서 낮술이나 마시자."


'초/중학교 때 만난 동네 친구' 라는 말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 왜 있잖는가. 서로 집안 사정도 훤히 다 알아서 더 이상 숨기거나 솔직해질 필요조차 없는 그런 친구.


이제는 각자 가정을 가지고 서로 떨어져서 지내지만, 가끔 이렇게 얼굴을 보는데, 이번엔 낮술 제안이다. ‘낮술’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나른하고 편하다. 당연히 가야지 콜.


나는 휴가를 내고 친구들을 만났다.

그 하루를 기록한다.


한 친구가 얼마 전 송도로 이사를 갔는데, 그쪽으로 오라고 한다. 많이 변했다던데, 송도. 거의 10년 전에 가본 듯.


나는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이 친구들하고는 종종 마신다.

술 못마시는 나를 타박하지도 않고, 재촉하지도 않아서 마음이 편하다.

별 말 하지 않아도 그냥 낄낄 댈 수 있어서 좋다.


"이제 몸에 좋은 안주 먹자."

예전엔 아무거나 먹었지만, 이젠 나이가 있으니 좋은 음식 먹자고 했다.

“회 먹자. 내가 좋은 데 알아.” 라고 C가 말했다.


우리는 인천항으로 이동했다.

회센터에 도착했다.

낮이라 한가하다.

오랜만이다. 이런 분위기


C가 익숙한 듯, 단골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이모님 안녕하세요~" 라고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도 덩달아 따라 앉았다.

친구가 아는 집으로 오니, 나도 마음이 편하다.

싱싱하다


적당한 코스로 주문했다.

그냥 몇 명이라고 하면 알아서 가져다 주신다.

요새는 메뉴 고르는 것도 일이다. 이렇게 정해서 주는 가게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갖가지 해산물과 회가 줄줄이 나온다. 신선하다. 그래서 맛있다. 역시 산지에서 먹어야하나보다.

아.. 정작 회를 안찍었구나..


맛있게 먹고 적당히 취했다.

참고로, 오늘은 계획이 없다. 즉흥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어차피 연차내고 낮에 모인건데, 시간에 쫓길 일도 없다. 적당히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면 된다.

"어디 갈까?"

"차이나타운 한 번 가볼까?"

"오케이"

차이나타운 구경 왔다.

차이나타운


어으 추워. 얼마 전,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을 다시 봤는데, 거기서 마지막 결전을 벌였던 장소가 차이나타운이었지. (나는 무한도전을 좋아해서 보고 또 본다.)

바로 앞이 인천역이다. 이 동네는 정말 오래된 분위기가 풍긴다. 발전이 더딘 것 같기도 하고.

인천역


"월미도는 여전한가?"

"궁금하면 가보자 ㅋㅋ"

월미도에 왔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썰렁하다. 예전엔 사람 정말 많았는데. 물론 20년 전 얘기긴 하지만.

월미도


놀이공원도 번쩍번쩍하지만, 사람은 없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아무래도 추워서 그렇겠지.

여전하구나


좀 걸었더니 춥다. 바닷가라 그런지, 더 추운 기분이다. 우리, 따뜻한 차 한잔 마시러 가자. 월미도에는 근사한 카페가 많다. 고집있는 사장님들이 자기 취향대로 꾸며놓은 곳들인데, 요새 친구들 취향에는 맞지 않겠지만, 우리 같은 아재들한테는 아늑하다.

여기 가자


여기도 사람이 없다. 한가해서 좋다.

내부는 이렇다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와서 다시 월미도를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오랜만에 사격 게임을 해보자. 육군 예비역 아저씨들에게 사격은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K2가 아니라 실력 발휘가 안될 것 같다‘는 둥, ‘반동이 약해서 재미없다’는 둥 투덜대며 각자 사로에 선다.

사격장


사격 끝.

그럼그렇지. 셋이 점수가 고만고만하다.

‘노안이 왔다’는 둥, ‘술을 너무 마신 것 같다’는 둥 각자 핑계를 중얼거리며 사격장을 빠져나왔다.


오 야구.

야구 게임도 그냥 지나갈 수 없지.

구경 중인 아재


요샌 투수 게임도 있더라.

한 번 던져보니까, 류현진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깨 빠질 뻔.


송도로 자리를 옮겼다.

조그만 오뎅집에 들어가서 한 잔 한다.

여기


송도는 저녁에도 사람이 많구나.

빈 자리가 거의 없다. 경기가 괜찮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나는 술안주로 황도를 좋아한다.


만날 때마다 똑같지만. 역시 또 20년 전 이야기다. 그 때 얘기는 해도해도 재밌다. 나이는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절과 별로 달라진게 없는 것 같다. 주변에선 아저씨, 회사에선 고참이지만 나는 저 먼 옛날과 별 차이가 없다.


변한 건 나일까, 세상일까.


정신은 그대로인데, 몸만 나이든 것 같다. 이런 내 생각을 주변에 말하기엔 창피하기도 하고, 어쩐지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아 속으로만 삭힌다.


뭐, 그렇다고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적극적으로 으쌰으쌰 하는 주책은 부리지 않는다.

'나를 원하지 않는 자리엔 가지 않는다' 라는 원칙만 잘 지키면 된다.

나이가 들면 뒤로 물러나, 조용한 곳에서 스스로 사색하며 지내는 것이 올바른 어른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젊은이들과 어울리려다가는 추태를 보이기 십상이고, 나는 그런 어른들을 많이 보았다.


늙어서 말이 많아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실수와 후회가 나온다. 그래서 최대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같이 나이든 사람끼리 웃고 떠드는 건 언제든 환영이다. '젊게 산다'며 오버하는 일 만은 피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모임이 즐거웠다. 나는 조심할 것 없이 신나게 떠들고 웃었다. 요새 말이 많아진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에, 이런 자리가 더욱 소중하다.

만나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자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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