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음악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 늘 음악을 들었다. 당시엔 카세트 테이프를 재생해서 들었는데, 찰카닥 하고 테이프가 데크에 들어가면 노래가 나왔다. 파일로 재생하는 요즘엔 보기 힘든 방식이다.
아버지가 고르는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의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차였기 때문에 선곡 권한은 나에게 없었다.
아버지는 몇 개의 카세트 테이프를 차에 애지중지 늘 갖고 다니셨다. 조영남의 노래를 종종 들으셨고, 대부분은 탐 존스의 음악을 들으셨다. 나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지금도 green green grass of home의 멜로디가 잊히지 않는다.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흥얼흥얼 따라부르던 아버지.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들으며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을 달래셨던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어느덧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아들은 차에 타면 보조석에 앉는걸 좋아한다. 나도 옆에 앉은 아들과 이야기 하며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 아들이 운전하던 나에게 물었다.
"아빠는 왜 자꾸 이런 노래만 들어?"
"응? 왜?"
"이상하잖아. 아빠특, 이상한 노래만 들음."
당시 내가 듣던 노래는 이거였다.
https://youtu.be/QNYT9wVwQ8A?si=5LW-e1kO4niHz61k
아들의 질문에 "노래가 좋잖아."라고 대답했는데, 대답해놓고 보니 수십년전 내 아버지의 답변과 같았다. 어쩐지 쑥스러웠다.
내가 ‘Stay with me’ 류의 시티팝(신스팝이든 뭐든)을 즐겨듣는 이유는 당시의 따뜻했던 분위기가 떠올라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버블경제시절 아무 걱정없던 일본의 분위기가 어쩐지 전해졌을까. 돈 걱정도, 직장 걱정도 없던 그 시절, 퇴근 후 TV앞에 앉아 맥주를 놓고 듣던 그 음악.
시티팝이라는 장르를 누군가 이렇게 정의했다.
내일 걱정이 없는 오늘의 노래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순 없을 것 같다.)
80년, 90년대의 풍족하진 않지만 따뜻했던 한국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 감성을 잘 살렸었다. 시티팝에는 그런 낭만이 있다. 어쩐지 뭉클해지는 그런 감성. (F인 것과는 상관없겠지) 그래서 듣는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따뜻한 정서가 있었던, 그랬던 한국은 IMF를 지나며 여러모로 어려워졌다. 낭만은 '중2병'이라는 이름으로 박살나버렸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그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 생존의 시대.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다시는 그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더 안타깝고 미안하다.
내가 미드 '프렌즈'를 보고 또 보는 이유도 시티팝을 듣는 이유와 비슷하다. 프렌즈에는 당시 풍족했던 미국의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있다. 프렌즈 속 젊은이들은 걱정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고, 늘 행복하다. 9/11도, 금융위기도 겪지 않은 안정적이고 행복한 시절.
한국에도 시티팝이 있다. 나는 많은 아티스트 중 김현철을 좋아하는데, 그는 일종의 천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 어떤 아이돌보다 세련된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다. (아이돌 폄하 아닙니다. 개인적인 취향이며, 호불호는 상대적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아이돌 중 TWICE의 'Say Something' 같은 곡도 시티팝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철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자.
https://youtu.be/5RWdWMpyw0w?si=5C4i12-gfnbMQxoj
음악에 좋고 나쁨은 없다. 더 아름답고 못난 것도 없다. 개인 취향이 있을 뿐인데, 나는 이런 음악 쪽에 더 가까울 뿐이다. 아재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
요새 많은 음악이 강렬한 비트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비트로 떡칠한 음악을 듣고 싶진 않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듣고싶을 뿐이다. 자꾸 예전 음악에 손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렇게 노인이 되어간다 해도 그저 받아들인다. 멜로디가 좋은 걸 어쩌랴. 좋은 멜로디가 있는 음악은 언제라도 환영이다.
멜로디와 함께, 좋은 음악의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가사인데. 밥 딜런의 음악은 그런 의미에서 음악이라기 보다는 '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낱 가수에게 무슨 '시' 운운하냐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이야기하지만, 밥 딜런은 대중음악 가수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는 음악 전문가도 아니고, 밥 딜런의 음악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가사가 좋다. 좋은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는 듣고도 여운이 길다. 무언가 뭉클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의 노래 'one two many mornigs'에 이런 가사가 있다.
You're right from your side
I'm right from mine
'당신은 당신의 편에서 맞고, 나는 내 편에서 맞아.' 라는 뜻인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와닿는다. 옳고 그름이 어디있나, 단지 나와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뿐. 싸울 필요가 없다. 세상 만사가 모두 그렇지 않은가?
아들과 함께 차에서 음악을 듣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래, 비트건 멜로디건 가사가 좋든나쁘든, 무슨 음악인지가 뭔 상관이랴, 그저 행복한 순간을 즐기면 그뿐. 오늘도 아들과 차를 타고 음악을 골라본다.
“아들, 듣고 싶은 거 있어?”
“아빠, TOP100 듣자!”
“좋지~“
행복한 순간에는 무슨 음악이든 좋다.
당신에게도 그런 음악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