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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10. 2024

토봉추어탕, 어른들만 즐기는 고소한 맛


아버지는 자기만 아는 맛집에 가족들을 데려가는 걸 좋아하셨다. 진짜 맛있는 식당이라며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를 모두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두근두근 기대했다. 햄버거? 피자? 짜장면? 뭘까?


하지만, 결국 차가 도착한 곳은 대부분 어른들이 좋아할 법한 한식당이었다. 꼬꼬마였던 나는 크게 실망하곤 했다. 기억나는 곳 중에 하나는 김포에 있던 추어탕 식당이었는데, 보통 초등학생은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잖는가. 대체, 미꾸라지가 들어있는 찌개가 웬말인가. 아버지는 싱글벙글 미소와 함께 식구들에게 한 그릇씩 직접 퍼주시며, ‘일단 먹어봐바~’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 마음을 이해 못 하고, 어린 마음에 표정관리에 실패한 채 억지로 한 그릇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젠 나도 추어탕이 맛있다.

하지만 혼자 간다. 가족이나 친구를 데리고 가고 싶지만, 보통은 추어탕을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 건 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럴 땐 혼자 간다. 혼자 밥을 먹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혼밥이 어려우신 분들은 도전해 보시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의외로 편하다. 음식 자체에 집중할 수 있기에 오롯하게 식사할 수 있다. 인간은 혼자 잘 지내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쌀쌀한 날씨에 한 그릇 먹고 싶어서 자주 가던 추어탕 집에 왔다.

토봉추어탕


추어탕은 호불호가 강하지만, 그만큼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맛있는 추어탕 집은 언제나 북적인다. 역시나 여기도 사람들이 가득이다. 물론 어르신들 위주이긴 하다만 서도.

실내


여기 밑반찬은 꽤 맛있다. 정갈하고 깔끔하다. 반찬만으로도 밥 한 공기 뚝딱할 수 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추어탕이 곧 나오기 때문이다. 맛있게 먹으려면 추어탕과 밥, 반찬을 같이 즐겨야 한다. 급하게 달리면 안 된다. 부추와 다진 마늘, 다진 고추는 기호에 따라 추어탕에 넣어 먹으면 된다.

밑반찬


이런 걸 뭐라고 부르지? 방짜유기라고 부르던가. 아무튼 놋쇠로 된 밥그릇이 맘에 든다. 대접받는 기분이고, 어쩐지 밥이 더 맛있다. 흰 밥에 조가 섞여있어 보기에도 예쁘다.


드디어 나왔다. 너무 바글바글 끓어서 사진을 찍으니 렌즈에 김이 서린다. 조금 식혔다가 찍었다. 나는 갖 폭발한 용암처럼 끓는 채로 나오는 국밥을 좋아한다. 미지근한 제품을 내놓는 가게는 자격미달이다. (회사에서도 미지근한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 끓기의 정도에 따라 국밥의 진심이 표현된다고 믿는다.


부추도 넣었다.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리며 부추 숨을 죽인다.


건더기가 푸짐하다. 시래기인가. 국물이 살짝 매콤하고 진하다. 아무래도 어탕이니만큼 살짝 걸쭉한 느낌이 있다. 입 안 가득 도는 풍미가, 여타 국밥들과는 다르다. 추어탕을 겁내는 분들도 많던데, 잘 만든 추어탕은 비린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훨씬 더 고소하고 담백하다. 이 집이 그렇다.


김치가 겉절이다. 나는 익은 김치보다 겉절이가 좋다. 양념이 충분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딱 적절한 지점을 지킨 맛이다. 모든 국밥에는 그에 어울리는 김치가 있다. 인생이 그렇듯 말이다. 여기 추어탕도 짝을 잘 찾았다.

김치


밥을 말았다. 밥의 찰기가 국물에 스며들어 깊은 맛을 낸다. 국밥의 매력은 바로 그때 나온다.


김치를 올려서 먹는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뚝배기 바닥이 드러났다.


나이 들며 입맛이 변한다는 건 슬프기도 하지만 신기하고 재미있다. 다양한 음식에 더 유연해지며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때는 즐기지 않았던 음식에 관대해지고, 어떨 땐 오히려 역으로 즐기게 되었다.


물론, 다양한 세대의 친구들과 즐길 수 없는 음식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나이 들며 홀로 고독하게 식사하는 것이 순리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여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오늘도 감사한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다음엔 또 어떤 걸 먹어볼까나. 국밥 기행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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