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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03. 2024

'듄 : 파트 2'를 보다



최대한 조심하겠지만, 스포일러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 예민하신 분은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시카리오로 기억한다. 나는 군 관련 영화를 좋아하는데, 듣도 보도 못한 리얼한 정보기관의 작전을 육회처럼 날 것 그대로 그린 영화였다.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칼 위를 걸어가는 듯한 긴장감을 영화 내내 유지하며, 정말 흥미롭게 관람했다.

영화 '시카리오'


그 감독의 영화라서 듄 1편도 보았었는데, 1편은 솔직히 좀 지루했다. 아무래도 거대한 서사의 소개 정도 의미였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2편은 그러지 않겠거니 믿고 혼자 극장을 찾았다.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영화는 주인공이 고난을 겪고, 절치부심 수련하여 각성, 결국 복수에 성공하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따른다. 대서사시 치고는 가볍다. 기존의 영웅 스토리로 이해하고 보면 심지어 뻔하기까지 하다. 그걸 3시간 내내 사막에서만 진행하니, 영화가 지루하다.


아니 이렇게 쉽고 간단히 메시아가 된다고? 물약? 우주를 지배하는 황제가 이렇게 쉽게? 몇몇 장면들에서는 너무 전형적이라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무지성으로 '리산 알 가입'을 외쳐댈 때, 이거 웃기려고 그러는 건가? 내가 지금 유머를 놓치는 건가?라고 살짝 고민했다. 마지막 결투는... 말을 줄인다.


1편에서 그렇게 강했던 라반을 2편에서 동네바보형으로 만든 건 왜일까


지루한 거 싫어하는 사람은 안 보는 게 좋겠다.


골수팬들은 말한다. '원작의 세계관을 알고 보면 이해가 될 것이며, 숨겨진 의미가 다양하고 깊다. 당신은 텍스트의 가치를 모른 채 영화를 봤기에 지루한 것이다.'라고 말하던데. 대중 상업영화를 보기 위해 ‘공부를 하고 오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원작을 읽을 생각이 없으며, 영화 자체로만 재미를 느끼고 싶단 말이다.


흔히 '진입장벽이 높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요즘엔 굳이 높은 장벽을 넘지 않아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화들이 많기 때문에, 장벽이 높은 영화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영화를 보기 위해 두꺼운 세계관 설정집을 미리 읽고 공부해야 한다면, 이것은 입시 준비인 걸까? 혹은 '듄 자격증' 취득자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조건이라도 있는 걸까. 영화 예매 플로우에 '듄 세계관 및 설정을 이해하셨나요?'라고 필수값 체크박스라도 하나 두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듄 원작 소설의 팬이 아닌 사람도 즐길 수 있게(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만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용아맥 환자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 영화는 무조건 용아맥으로 봐야 한다고. 용아맥에서 보지 않으면 영화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없다고. 그런데, 상영 플랫폼을 그렇게 따져야 하는 영화라면 일반관에서는 상영해선 안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일반관에서 관람했기 때문에 지루하다 느끼는 걸 수도 있겠구나. 이럴 땐 '일반관에서 봐서 죄송하다'라고 해야 되는 걸까.


물론 방대한 세계관을 스크린에 옮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원작 자체의 한계가 있을 테니. 어디서 봤는데, 예전부터 소설 '듄'을 영화화하려는 시도가 몇 번 있었다. 그 엄청난 스케일에 많은 감독들이 포기하거나, 혹시 만들었어도 실패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번 듄은 아쉬운 점도 있지만 시도 자체가 박수받을 일이다.


이 장면은 좀 뻔했다


스타워즈가 듄을 참고했다던데, 이 영화 '듄' 시리즈가 스타워즈 급의 레전드로 남기엔 어딘가 살짝 부족해 보인다. 우주 메시아 탄생 스토리라고 하기엔 임팩트가 작고 밋밋하다. 호흡이 너무 길다. 잔잔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제다이'라는 캐릭터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서사에서의 심심함이 있지만, '듄'에는 그것을 상쇄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미장센. 이야기의 탄탄함보다는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마치 미술관을 둘러보는 기분으로 관람했다. 거대하여 웅장하고,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건물과 소품, 크리쳐들이 장면장면을 가득 채웠다. 음악도 적재적소에서 몰입할 수 있도록 잘 배치되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스 짐머란다. 역시. 혹시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이 미장센과 음악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프레맨 족들에게서 팔레스타인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사막이라는 배경과 아랍풍의 미술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지배당하는, 힘없는 소수 민족의 살아남기 위한 극한 행동.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테러가 될 수도, 성전이 될 수도 있는 복잡한 세계.


팔레스타인은 오늘도 신의 구원을 기다리며 가자지구에 갇힌 채 숨죽여 울고 있다. 영화 듄처럼 어디선가 메시아가 나타나 그들을 푸른 파라다이스로 데려가 줄 수 있을까.



아무튼,

눈이 꽉 차는 웅장한 규모의 화면과 음악을 좋아하면 미술관에 가는 기분으로 보면 좋겠다.

하지만 지루한 거 싫어하는 사람은 깜빡 졸다 시간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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