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만만한 반팔 티셔츠
나는 회사에 한 종류의 옷만 입고 간다.
아침에 씻고,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라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 약속된, 정해진 순서대로 차례로 옷을 집어 입으면 그만이다. 그날그날 스타일에 맞춰 옷을 고르느라 쓰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입었다 벗었다 시간낭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간편하다. 이렇게 지낸 지 꽤 되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니, 빈정대는 동료도 있었다. '옷이 그것뿐이에요?'라는 식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 쓰지 않는다. 혹시 그분께서 우려하실까 봐 한 말씀드린다. 걱정 마시라. 같은 옷으로 여러 벌 갖고 있으니. 당연히 세탁도 잘하고 있다.
미니멀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정하고 가장 먼저 손댄 것이 옷장이었다. 왜냐면 '옷'이야말로 전적으로 '내 소유'인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가족과 같이 생활하다 보니, 마음대로 물건을 줄일 수 없었다. 묘하게 용도가 겹치는 물건이라던가, 공용 물품을 내 멋대로 내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잖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에서 힘들어하는 부분도, '가족과의 합의'가 아닐까 한다. 다른 가족들은 맥시멀 라이프를 원하는데 나만 미니멀하고 싶다고 집안을 마음대로 심플하게 만들면 구성원 간에 싸움만 날 뿐이다.
그래서 '옷장'을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다.
공동생활에서 거의 유일하며, 오롯한 '내 것'.
시작은 반팔 티셔츠가 적당하다.
반팔 티셔츠야말로 수십 장 갖고 있을 필요 없는 가장 만만한 종류의 옷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리기도 쉽다. 당장 옷장을 열어보면 아마 반팔티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여름에 외출용으로 샀다가, 조금 싫증 나면 집에서만 입는 홈웨어가 되어버린 수많은 색색깔 반팔 티셔츠들. 외출복과 실내복의 경계를 따지기 애매한 그 친구들.
생각해 보면, 반팔 티셔츠를 많이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 최대 하루 한 벌이면 충분하다. 자주 세탁한다면 다섯 벌 정도로 일주일을 지낼 수 있다. 물론 세탁 주기에 따른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입었을 때 편안하고, 감촉이 좋고, 핏이 적당하며, 어떤 바지에나 어울리는, 질 좋은 반팔 티셔츠 딱 몇 개만 갖고 있으면 세상 간편하고 행복하다. 그러니 반팔 티셔츠부터 줄여보자.
옷장을 열어 반팔을 죄다 꺼내어 펼쳐 바닥에 늘어놓고, 죽 훑어본다. 지그시. 몇 초면 된다. 그러면 버릴 것들이 일단 눈에 들어온다. 버리기 쉬운 것부터, 맘에 안 들고 볼 때마다 답답한 것들 먼저 빼서 버리면 된다. 왜 그런 것 있잖아. '어쩐지 불편한 것들' 색깔, 재질, 핏, 옷이 몸에 닿는 촉감까지 여하튼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그냥 버리면 된다. 왜? 어차피 안 입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때, 마음속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엄연히 버려야 할 것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그 논리를 무의식적으로 왜곡한다. 이렇게.
이건 외출복으론 안 되겠고,
홈웨어로 편하게 입지 뭐.
그냥 일단 두자, 혹시 모르잖아.
버리긴 아깝네.
왜? 대체 왜, 집에서는 맘에 안 드는 옷을 입어도 되나? 집에서 목 늘어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어야 되는 이유라도? 집에서도 깔끔하게, 마음에 드는 옷을 입자. 그러니, 눈에 거슬리는 건, 그냥 버리자. 쟁여놓지 말자. 버릴 물건 앞에서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마라.
이제 그만 외면하고, 옷장 문을 열어 전부 꺼내어 보자.
모두 바닥에 펼쳐놓고 지그시 훑어보자.
안 입는 것들을 조용히 추려내자.
버리자.
이건 입을만하니까 뒀다가 누구 줘야지, 당근해야지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말자. 당신도 불편해서 안 입는 걸 왜 남을 주나. 중고로 팔아보려고 쟁여놓으면, 다시 옷장으로 기어들어가 꽁꽁 숨는다. 지금 당장 처리하자. "나중에 페인트 칠 할 때 작업복으로 입고 버려야지." 같은 기상천외한 계획도 세우지 마라. 당신이 직접 페인트 칠 할 일은 앞으로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버릴 옷 앞에서는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마라. 제발.
지금 이 글을 다 읽으면,
가지고 있는 반팔티를 전부 꺼내보자.
반팔티셔츠를 시작으로 옷장을 정리해 보자.
나만의 심플한 옷장을 만들어보자.
가볍고 간소한 옷장.
당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