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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13. 2024

잘 가요, 나의 손오공


초등학교 시절 아이큐점프라는 만화잡지가 있었다. 보물섬과 비슷한 느낌의 잡지였다. 매주 발행했는데, 나는 용돈이 충분치 않아 그걸 매번 살 수 없었다.


당시엔 이런 느낌이었다.

https://blog.naver.com/champ76/221410978405


드래곤볼

아이큐점프에는 드래곤볼이 연재되었다. 나는 다른 만화에는 관심이 없었고, 드래곤볼 만큼은 정말 보고 싶었다. 잡지 속 드래곤볼은 특별히 봉해져 있었고, 가위로 잘라서 개봉하는 방식이었다. 아마 서점에서 공짜로 드래곤볼 부분만 읽고 구매하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무튼, 당시의 드래곤볼은 그 정도로 인기였다. 당시 동네 친구 C가 정기적으로 소년점프를 샀고, 나는 그에게서 드래곤볼을 얻어 볼 수 있었다.


초창기 드래곤볼은 닥터슬럼프와 비슷한 코믹 만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천하제일무도회가 나오는 격투만화로 탈바꿈하던 그 순간, 드래곤볼은 전설이 되었다. 나는 그 전설과 함께 초등학교 중학교를 보낼 수 있었다.


크리링을 잃은 분노가 폭발하며, 손오공이 초사이언으로 각성하던 그 장면. 나는 양손으로 만화책을 꼭 쥐고 바로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페이지를 되돌아가며 읽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흥분했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초사이어인으로 최초 각성한 손오공


무천도사, 크리링, 베지터, 피콜로, 프리저, 셀 등등 드래곤볼 세계관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만화 속 격투 액션장면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펜으로 그린 그림만으로도 타격감과 속도, 파워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배경과 작화의 꼼꼼함과 세밀함은 말해 무엇하랴. 드래곤볼은 어린 나에게 문화 충격과도 다름없었고, 내 유소년기 성격과 가치관 형성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최고의 만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슬램덩크와 함께 드래곤볼을 손에 꼽는다. 나는 감히, ‘드래곤볼 이후의 만화들은 모두 드래곤볼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그렇다.


그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지난 3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향년 68세로,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거나, 후배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나이였는데, 참 안타깝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영원히 역사에 남아 만화를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전설이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전설이 되었다.


혹시 모르지, 지금쯤 토리야마 아키라가 염라대왕을 만나고 있을지도.

어떤 팬의 헌정 만화. 뭉클하다.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어서,

정말 정말 고맙다는 한마디 말은 남기고 싶었다.


덕분에 행복한 소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나의 손오공, 이제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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