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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16. 2024

아이언맨, 눈 정도는 마주쳐 줄 수 있었잖아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어째서 인종차별을 했는가


나는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거나, 모임에 참석하는 등의 결정을 할 때 단 하나의 원칙만을 생각한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부수적이며 중요치 않다. 그 원칙에 따라 일단 친구로 생각하거나, 모임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면 최선을 다한다. 단순하다. 그 단 하나의 기준은 바로.


나 싫다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뿐이다.

그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떠들고 싶다면, 그거면 된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할지 고민이 될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불청객으로 느껴지는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내가 불청객으로 느껴지는 모임에는 참석할 필요가 없다. 나 싫다는데, 굳이 억지로 꾸역꾸역 찾아가 잡상인 취급받으며 불청객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불청객의 감정은 젊을 땐 느끼기 어렵다. 젊음이라는 무기로 어디에서나 환영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뒤처지는 순간, 꺼려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우리는 그 찰나의 분위기를 잘 읽어야 한다.


이때, 눈치 없이 '인맥 관리'라는 목적으로 스스로 불청객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지만, 혹시 커리어나 평판에 도움이 될까 싶어 꾸역꾸역 나 싫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애쓰는 것이다. (부장님들, 젊은 직원들이 농담에 웃어주는건 당신이 부장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라. 예술과 철학에 관심을 두고 성장하면 더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다. 나는 시상식에서 불청객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오랜만에. 내가 미국으로 날아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직접 참석했다는 건 아니다. 중계를 봤을 뿐이다. 그런데 한 장면에서 불현듯, 불청객이 된 듯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불쾌했다. 뭐지, 이 기분은?


바로 이 장면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영화 ‘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장면이었다. 영상을 링크로 확인해 보자. (바쁘신 분은 47초부터 보시면 됩니다.)

https://youtu.be/jqJ90ELGv1I?si=OJf9qF4bBErKP3kB&t=47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지난해 수상자 키 호이 콴의 얼굴을 보라.


그는 동양인을 무시하는 백인의 전형적인 인종차별적 행동을 보였다. 이는 해외에 거주하는 동양인들이 많이 당하는 방식이다. 대놓고 욕설을 하거나 때리지는 않지만, 마치 ’동양인이 그 자리에 없는 듯‘ 투명인간처럼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운동경기에서 멋진 플레이를 했을 때, 동양인만 쏙 빼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식이다. 나중에 항의하면, “그럴 수도 있지? 왜 이래 예민하게?”로 넘어간다. 백인들의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기 같은 인종차별’. 이를 마이크로 어그레션 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 aggression)은 아주 작다는 뜻의 ‘micro’와 공격이라는 뜻의 ‘aggression’의 합성어로, 일상에서 미묘한 말이나 행동으로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을 뜻한다. 흑인이나 동양인이 버스 옆자리에 앉을 경우 자리를 옮겨 피한다거나, 식당에 빈자리가 많은데도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구석 자리로 안내하는 등의 행동이 이에 속한다.

- 조선일보 기사 ‘차별 아닌 듯한 차별...오스카 시상식장 ‘마이크로어그레션’ 논란’ 중에서


혹시, 위 영상이 악의적인 편집이라고 생각한다면 앞뒤가 모두 기록된 영상을 보자.

https://youtu.be/oH4tQzxcpPI?si=aPy45Ze7VicqsMHW


시상자인 ’키 호이 콴‘은 작년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인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동양인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시상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고, 마치 옷걸이에서 옷을 낚아채듯 트로피만 빼앗아 가고 시상자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키 호이 콴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눈을 마주치고 악수라도 하려고 애처롭게 바라보고 팔을 잡는 모습에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콴을 무시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 옆 백인들과는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심지어 주먹인사까지 한다.


위 영상의 수많은 댓글들은 그의 무례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키 호이 콴을 오스카에서 서빙하는 웨이터처럼 대했다."


영상만으로는 긴가민가하다는 한국인들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입을 모아, '바로 저거다. 우리는 저런 식으로 인종차별 당한다.'고 토로한다. 정작 당하는 사람들이 인종차별 맞다고 하는데,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백인들을 옹호하는 이상한 현실.


너무 큰 무대라 긴장한 탓에 자기도 모르게 그랬을 거라고? 로버트 다우니가 수상한 상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수십 년간 영화를 찍어온 스타 중의 스타인데 시상식에서 긴장을? 수상 소감 발표의 제스처와 멘트들에 자신감이 넘쳐나는데도?


만약,
시상자가 동양인이 아니라
'로버트 드 니로' 나 '알 파치노' 였더라도
똑같이 했을까?


혹시 만에 하나, 너무나 긴장했었다고 좋게 생각해 보자. 인간은 그런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온다. 마음속 저 안에 숨기고 있던 본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술에 취했을 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과 비슷하다. 식당에서 종업원들을 대하는 태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유이다. 힘들고 정신없는 순간에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동양인을 패싱하고, 백인과 악수하고 주먹인사를 나누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아이언맨을 좋아하고, 어벤저스의 팬이었던 동양인이 많았을 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런 글도 썼었다. https://brunch.co.kr/@dontgiveup/166


동양에 아이언맨 팬이 많다는 건, 전 세계 영화 흥행 실적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간단한 숫자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그걸 모를리는 없다. 하지만 저런 큰 무대에서 대놓고 동양인을 패싱 하는 태도라면, 평소 어떤 마음가짐일지 가늠이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불청객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너희 동양인은 필요 없어‘ 라는 태도.


나는 불청객이 되었다.


좋아해 달라는 말도 없었는데,

제 발로 찾아가 영화를 보고,

혼자 신나서 열광한 불청객.


불청객이라는 기분이 들면 자리를 뜬다. 원칙이다. 이젠 관객석에서 일어날 때가 되었다. 너무 오래 앉아있었나 보다. 원하지도 않는데, 눈치도 없이 말이다.


물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무대 뒤에서 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언론에 배포하긴 했지만, 마이크로 어그레션의 특징이 ‘일단 무시, 나중에 아닌 척’이라는 점으로 볼 때 너무나 전형적이다. 또한, 나는 헐리웃의 연출된 장면보다는 무의식의 발현 쪽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앞서 말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바로 그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입장을 기다렸다. '실수였다. 정신없었다. 난처했을 키 호이 콴에게 미안하다.'는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시상식 이후, 인종차별 논란이 화제가 되는 와중에 'Oh happy day'라는 글과 함께 오스카상과 커피를 손에 든 사진 한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나 싫다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스스로 불청객으로 느껴지는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간단한 원칙.


싫다는 사람의 팬을 자처하며, 굳이 불청객이 될 필요는 없지. 괜찮다. 이렇게 삶은 이어진다. ‘시절인연‘이라고 하던가. 기대하고 또 실망하고. 몰랐던 걸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게 인생이다.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조금 슬플 뿐.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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