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오크밸리 리조트에 위치한, 한솔문화재단이 관리하는 '종이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매우 유명한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계절 변화하는 아름다운 주변 자연환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가 무려 '안도 다다오' 이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의 팬으로서, 다녀온 내용을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안도 다다오'는 누구냐.
일본의 건축가로 '자연과의 조화'를 모티브로 삼는다. '물'을 건축물과 조화롭게 사용하기도 했고('물의 교회' , '물의 절'), '빛'을 건물 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대학 수업에서 '빛의 교회'로 안도 다다오를 처음 만났는데, 좀 충격받았었다. 설마 '빛' 그 자체를 건축재료로 사용하리라는 생각은 못해봤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을 보자. '빛의 교회'에서 십자가는 빛 그 자체이다. 극도의 단순함을 이용해, 아름다움을 넘어 경건한 공간을 창조했다. 교회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벽의 배치도 놀라운데,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면 건축 에세이가 되어버리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그는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이었던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위 사진의 '빛의 교회'를 보면 마감이나 벽칠은 없다. 타설 된 콘크리트 그대로 두어, 자연스러운 연출을 했다. 말 그대로 미니멀리즘의 극치.
바로 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곳으로 가보자.
입구로 들어선다. 박물관 전체에서 자주 만나게 될, 돌을 쌓아 올린 저 패턴.
웰컴센터
기다랗고 낮은 천장에 규칙적인 기둥들이 나열되었다. 예의 노출 콘크리트의 첫 등장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거푸집 고정틀 자국까지 보인다. 노출 콘크리트의 원조를 굳이 따지자면 '르 코르뷔지에'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대중화에 기여한 건 역시 안도 다다오라고 할 수밖에. 그건 부정할 수 없겠지.
매표소. 티켓을 구매하는 장소까지도 그의 색깔이 역력하다.
플라워 가든으로 가는 진입로.
우측 상단을 보면, 인공조명이 아니다. 자연광이 스며들어 복도를 밝힌다.
빛의 공간(Space of Light)
진입로를 보자. 마치 땅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벽이 높은, 좁은 통로를 걸어 넓은 공간에 진입하도록 만들었다.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일까.
유럽의 도시가 이런 식으로 배치되었지. 유럽에 가서 걸어보면, 좁은 골목길을 빙글빙글 걷다가 갑자기 꽝! 하며 넓은 광장과 웅장한 교회가 나타난다. 시민들이 교회에 복종하도록 구성한 종교적 도시건축.
코너를 돌면 입구가 나타난다.
여기가 바로 '빛의 공간'이다. 어디서 많이 본 구조가 나타난다.
'빛의 교회'와 같은 십자가 패턴을 천장에 구현해 놓았다. 왜 여기를 '빛의 공간'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하늘에서 빛의 십자가가 쏟아진다. 기둥도 없이 하중을 어떻게 견디는지 신기하다.
'뮤지엄 산' 뒤쪽에는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돌산들이 있는데,
여기 플라워 가든에도 이런 식의 '고분'을 표현한 듯한 얕은 언덕들이 군데군데 구현되어 있다.
‘빛의 공간’과 어우러진 고분 모양의 언덕을 보자.
산책로가 뜨거웠는데, 우산(양산)을 비치해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워터 가든.
이제 안도 다다오 특유의 '얕은 물'과 어우러져, 물에 떠 있는 듯한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뮤지엄 본관을 아직 보여주지 않는다.
길고 낮은 콘크리트 벽이 관람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그는 길고 낮은 사선의 벽을 좋아하나 보다. 저 빨간 구조물은 지나쳤다. 건축물이라고 보기 어렵구나.
본격적인 워터 가든으로 들어가는 진입.
여기 뷰가 마음에 든다. 건물이 물에 잠겨있는 건지, 물 위에 떠있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모호함이 좋다. 어떻게 보면 인류가 발전하기 전에 그저 돌로 쌓아 올린 신전 같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든다. 얼마전에 영화 '듄'을 관람해서 그런건가.
본관 안쪽벽은 이런 돌 패턴 혹은 노출 콘크리트의 조합이다.
복도 조명은 아까 본 자연광의 위치와 같은 곳에 간접 조명으로 구현되었다.
깜깜한 밤에 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건물 안쪽에서도 바깥의 물을 볼 수 있다.
수면과 거의 같은 레벨로 바닥이 위치해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이다.
건물 전체를 이루고 있는 돌 패턴.
이런 창문을 통유리로 하지 않고, 굳이 이렇게 창살을 촘촘히 넣은 것은 혹시 아래와 같이, 그림자를 일부러 노린 것일까. 건축가의 의도를 알 수 없어서 더 재밌다.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
빛이 바닥에 그려놓은 십자가.
계단 참. 외벽은 돌, 내벽은 노출 콘크리트. 그런 구성이구나.
유리에 색을 입혀놨다. 그래서 복도에 이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잘 보면, 바깥쪽의 물결이 빛에 반사되어 건물 안쪽에도 '빛의 물결'이 친다. 설마 의도한 겁니까 건축가님?
높은 계단실은 오래된 성을 떠올린다. 층고가 높으면 영적인 분위기가 생긴다.
얕은 물이 건물 내 여기저기를 조용히 흘러간다. 낮은 벽이 시선을 갈라놓기도 하고, 물 위에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돌덩이들이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눈이 심심하지 않다.
이 부분이 재미있었다. 경사로를 이어서 층간 이동을 유도하는데, 둥글게 표현하지 않고, 뾰족하게 만들어놨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노출 콘크리트와 잘 어울린다. 게다가 굳이 벽 중간에 공간을 비워놓아, 내부 중정(?)을 바라볼 수 있게 해 놨다. 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귀찮았겠구나 싶다.
낮은 방들을 지나면 갑자기 이렇게 높은 공간이 나온다. 거룩하다. 따분하지 않은 구성이다.
에일리언 같은 영화에 나오는, 고대의 초거대 우주선 내부가 혹시 이런 모양이 아닐까.
뾰족한 복도를 따라 올라가며 벽 틈으로 내다보이는 중정. 두꺼운 유리로 마감해 놨던데, 혹시 비가 들이쳐서 그런 걸까. 설계자는 이걸 원했을까. ’빛의 교회‘의 십자가도 이런 식으로 유리를 용접했던 걸로 기억한다.
창문에 색을 입혔다. 그래서 어떤 방에서는 바깥이 이렇게 보인다. 당연히 내부는 온통 색색깔의 향연이다. 빛을 좋아하는 작가답다.
'빛의 방'이라고 불러야 하나. 색유리를 활용, 신비로운 느낌을 연출했다.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아서 그런지 관람객이 유독 많다.
스톤 가든.
신라 고분을 형상화 한 9개의 돌무덤이 있다. 각각에 이름이 붙어있는데, 대한민국의 8도와 제주도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런 현대미술에 조예가 없는 아예 문외한으로, 적당한 감상평을 찾지 못한다.
여기까지 보면 전체적으로 한 바퀴 다 본 셈이다. 물론 중간중간 전시장이 있고, 테라스가 있긴 하지만 건물 위주로 기록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던데, 그렇다고 계절마다 올 순 없고. 앞으로 혹시 오크밸리 근처에 오면 주변이나 둘러보고 가야겠다.
예술가는 일정한 유명세를 얻으면, 제작비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다는데. 그 점이 참 부럽다. 그래서 다들 유명해지라고 하는가 보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예술작품 중에 건축물을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여타 작품들과 달리 '공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만들지 않고, '어딘가'를 만든다. 비어있는 곳을 창조한다. 그 안에서 인간이 살아 움직이면, 비로소 작품은 완성된다. 철학적이다.
어릴 땐 좋은 건축물을 보면 나도 그렇게 그려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웬걸, 지금은 보고 느끼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그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혹시 아는가, 여기서 받은 영감이 나의 업무에 도움을 준다거나, 혹시 에세이로 표현할 수 있을지도. 아니 그저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예술작품이나 공연을 보는 것은 반드시 어떻게든 인간 무의식의 성장을 이끄니까.
훌륭한 작품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