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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y 11. 2024

‘굿 윌 헌팅‘을 다시 보다


영화 '굿 윌 헌팅'

너무나 유명한 작품으로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명작이다. 최근 영화를 다시 한번 관람했다.



본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맷 데이먼의 풋풋한 시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믿고 보는

밴 애플렉과의 케미까지 흐뭇한 표정으로 내내 지켜봤다. 아직까지도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 둘의 친구 관계는 정말 부러울 지경이다.


풋풋한 시절


알다시피 그 둘은 절친이었고, 같이 이 영화의 각본을 써서, 제작사를 찾아다니며 기회를 찾았다. 결국 성공했다. 그 둘은 이 영화로 1998년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했다.


귀엽구만


영화는 간단한 내용이다. 맷 데이먼 역할의 주인공 '윌 헌팅'은 학대당했던 불운한 가정환경과 성장배경으로 좌절하고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젊은이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천재로, 누구도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그저 한번 쓱 보고 풀어내는 수준이다.


윌은 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벽에 적인 수학 문제를 몰래 풀어버린다


그의 수학적 재능을 발견한 대학 교수는 '윌'을 제대로 된 수학자로 키워보고 싶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윌'의 마음은 굳게 닫혀있다. 그는 늘 엇나가고 반항한다. 그 과정에서 '윌'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지도 교수, 선배, 멘토의 역할로 '숀 맥과이어' 교수가 등장하는데.


숀 맥과이어 교수


'맥과이어' 교수는 아내를 잃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윌'을 만난 그는, 일반적인 심리학자와 다르게 접근한다. 그는 '윌'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줄 뿐, 입에 발린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각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던 '윌'과 '맥과이어'. 둘은 티격태격하며 깊은 우정을 쌓는다. 결국 '윌'은 '맥과이어' 교수에게 마음을 열고,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 그렇게 둘은 서로 함께 성장한다.



나는 이 영화를 20대에 처음 보았었는데, 당시에도 물론 재미있었다. 명작은 영원한 법이다. 지금 다시 봐도 역시 재미있더라. 하지만 묘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때 그 필름이니 영화 내용은 변한 게 전혀 없겠지. 달라진 건 바로 나였다.


20대에 본 ‘굿 윌 헌팅’에서는 맷 데이먼에 감정이 이입되었다. 당시에 영화 속 맷 데이먼과 비슷한 나이대였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당시 나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영화 속 로빈 윌리엄스 같은 좋은 인생 선배나 형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조언도 듣고, 속 깊은 대화도 나누고 싶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으며, 좌절하고 괴로워하지 않는 인생의 진수를 질문할 수 있는 선배가 필요했다. 마치 영화 속 로빈 윌리엄스 같은 사람 말이다. 그 생각은 이 영화를 보고 더 심해졌다.


나는 찾아다녔다. 열심히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못 찾음


결국 독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궁금했는데 설명해 줄 사람이 없으니. 대학 때는 별 일이 없다면,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때 생긴 독서 습관은 지금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때와 달라졌다. 나이가 든 것이다. 나이가 들어 다시 이 영화를 보니, 이젠 '맥과이어'교수(로빈 윌리엄스) 쪽에 감정이 더 실린다. 나도 그 처럼 후배들의 성장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아니, 너무 거창하구나. 나는 누굴 성장시키고 말고 할 능력도 없으니 그냥 돕고 싶다고 하자. 소명이라고 하면 소명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 직업을 오래 하고 있으니 업무적으로도 가능하겠지, 조금 더 오래 살았으니 인생에서도 가능할 테고. 어떻게든 작게나마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혹시 그 과정에서 나도 영화 속 로빈 월리엄스처럼 인생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있다.


요새 회사에 태도가 좋은 후배가 눈에 띄어, 그분의 성장을 돕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분이 열심히, 치열하게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흐뭇하고, 그가 이렇게 성장해 후에 얼마나 멋진 리더가 될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하지만 뻔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선을 지켜야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돕는 '어른의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남은 인생에서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

또 나는 그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 죽기 전에 삶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마음이 들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마틴 루터 킹은 말했다.

“우리는 내가 왜 만들어졌는지 이유를 찾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과업, 나의 소명을 발견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고 나면 온 힘을 다해 내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꿈을 찾아 먼 길을 훌쩍 떠나는 윌의 모습이 대견하고 아름답다.

윌의 앞 길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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