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가?
돈가스는 이상하게 질리지가 않는다. 꼬꼬마 시절부터 그랬다. 어릴 적 엄마가 데려간 동네 오래된 상가의 돈가스 집. 엄마는 나와 시장에 가면 항상 그 가게에서 돈가스를 사 주셨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가끔 먹는 돈가스는 떡볶이만 먹던 국민학생에겐 별미 중의 별미였다.
나는 지금도 돈가스를 좋아한다. 잊을만하면 먹는다. 정기적으로 섭취한다. 오늘도 맛있기로 유명한 돈가스 집을 찾았다. 바로 ‘윤화돈까스’
기사식당으로 시작해서 입소문을 타 유명해진 곳이다. 장사한 지 30년이 넘었다니 대단한 역사와 전통이다. 기사님들 입맛을 사로잡았다면, 맛은 당연히 좋을 터. 믿고 먹어보자.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기사식당의 특성상 1인석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평일 점심시간에는 꽉 들어찰 듯. 아무리 복잡한 맛집이라도 혼자 방문하면 대부분 자리가 있는데, 대부분이 1인 방문객인 기사식당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저녁 시간을 피해 와서 그런지 여유 있네.
주문을 하니, 밑반찬을 가져다주신다. 남산돈가스 때문인지, 요새 돈가스 가게에서는 풋고추를 대부분 디폴트로 제공한다. 이 집은 추가로 독특하게 장국을 내준다.
스프. 내 사랑 스프. 나는 스프를 좋아한다. 아웃백의 스프도 좋고, 마마스의 스프도 좋다. 오뚜기도 물론이다. 스프는 다 좋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스프를 먹으면 힘이 난다.
스프 없는 돈가스 집은 방문하지 않는다. 나는 일본식 돈가스 가게는 피하는데, 스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양식 돈가스가 좋다.
돈가스가 나왔다. 적당한 크기다. 너무 크면 부담스럽다. 이 정도가 딱 좋다.
거기에 밥 한 덩이. 양배추. 마카로니가 사이드로 올라가 있다.
귀퉁이가 바삭하다. 이 부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 입 속에서 가볍게 바스러진다. 그 식감이 재밌다.
소스 맛이 묘하다. 줄줄 흘러내리지 않고, 꾸덕꾸덕하다. 요새 달콤하기만 한 소스가 많은데, 이 집은 가볍게 달지 않다. 뭉근한 깊이가 있다. 큰 솥에서 오랫동안 부글부글 푹 끓인 느낌이다.
같이 나오는 된장국이 짜다. 좀 매콤하네. 청양고추가 들어가 있다. 돈가스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장치로 보인다. 잘하는 음식점은 이렇게 전체적인 조화가 좋다.
고기가 너무 두껍지 않다. 나는 일본식 돈가스를 안 좋아하는데 고기가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옛날 경양식 돈가스는 고기가 적당히 얇아서 먹기에 좋고, 얇은 만큼 소스가 잘 배어들어서 맘에 든다.
김치는 중국산은 아니다. 잘 익어서 돈가스와 어울린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고소하고 쫄깃하다. 배어든 소스의 달콤한 감칠맛이 맛깔난다.
돈가스에 빼놓을 수 없는 양배추 샐러드. 양배추엔 많은 소스가 필요 없다. 케첩과 마요네즈면 이미 충분하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전통의 조합. 클래식이여 영원하라.
역시, 소스는 눅눅할 정도로 듬뿍 적셔 먹어야 맛있다.
고추를 된장에 찍어서 먹는다. 아삭한 식감이 맛깔난다. 안 매워서 좋구나. 조금씩 느끼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마카로니. 추억의 맛. 없으면 섭섭하지.
밥이 빠지면 안 된다. 돈가스엔 밥이 있어야 한다.
자고로 탄수화물 없이 음식의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돈가스 크기가 적당해서 질리지 않고 계속 먹는다. 왕왕돈가스처럼 사이즈가 너무 크면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된다.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져서 먹기 어렵다. 나는 푸드 파이터가 아니니까. 음식이랑 싸우기는 싫다.
다 먹었다. 전부 싹싹 비웠다. 컨셉은 발우공양이다.
이 집은 기사식당으로 시작해서 유명해진 만큼, 가격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다. 물론 전체적인 외식물가가 올라서 상대적인 이야기다. 요새 물가 상승이 무서울 지경이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가족과 함께 즐긴, 맛있는 음식의 기억은 소중하다. 특히 부모님과 함께한 음식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그 기억이 의외의 큰 힘이 될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엄마 손 잡고 찾아가 먹었던 돈가스의 기억은 달콤하고 따뜻하다. 돈가스야 말로 남녀노소 호불호가 없는 메뉴이니,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빠엄마와 손잡고 와서 가볍게 즐기기에 좋겠다.
식구(食口)의 뜻이, '같이 밥 먹는 사이'가 아니던가. 자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같이 즐기며 행복한 기억을 남겨주는 것은 어떨까. 혹은,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 한 접시 대접해 드린다면 아름다운 추억이 될 테다. 그런 게 가족이니까.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