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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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던 한재림 감독은 전작인 ‘비상선언’의 실패로 이번 작품의 성패가 매우 중요해졌다. 재기를 위한 중대한 시점이다. 최근 영화계의 투자가 얼어붙은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작품이다. 회당 3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쏟아져 들어갔다니,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작품인 ’오징어 게임‘처럼 흥행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면서 힘들었다. 화면 속 이기적이고 무례한 인간들을 보기 어려웠다. 그런 인간들을 피하기 위해 현실 세계에서도 노력 중이건만, 굳이 시간을 내 넷플릭스 8부작을 다 관람했다.
왜 그걸 참아가며 보았냐면,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생각으로 봤다. 어떤 인간들이 존재하고, 그런 인간들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마치 교보재 인 양 관람했다.
나는 요새 무식하고 뻔뻔하고 무례하고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들과 엮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평범한 삶 속에서도 그렇다. 그들과는 대적하거나 싸울 수 없다. 기본적인 예의나 공감능력, 인성, 배려 등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과 절대 싸우지 말라.
그저 가까이 가지 않고 피하는 방법뿐이다.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단지 그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 ‘쎄한’ 느낌을 놓치지 않는 레이더를 발달시켜야 한다. 이런 류의 영화나 드라마는 방송 교보재로 적합하다. 인강처럼 영상 교재로 학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이 드라마, 시나리오의 개연성은 포기하고 봐야 한다. 왜 8층이 목욕할 때 간단히 권총을 빼앗지 않았는가, 그냥 광장에서 잔뜩 물건을 주문해서 시간을 전부 써버리면 쇼를 끝낼 수 있었잖는가 등등, 앞뒤가 맞지 않는 어설픈 시나리오가 답답했지만 그건 부수적일 뿐. 인간 본성의 법칙을 찾을 수 있다면 내러티브 따위는 잠시 내려두자.
모두 예상하듯, 다양한 성격의 인간들이 모여 친목하고, 협력하지만 결국 싸우고, 괴롭히고, 고통주며 극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흔한 리얼리티 쇼의 결말이다. 사회의 축소판을 흥행을 위해 과격하게 표현해 놨다고 생각하면 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니만큼 잔인성도 있고. 누군가는 이익을 위해 동물처럼 행동하고, 누군가는 그 와중에도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나는 과연 어느 쪽일까. 대의를 위해 이익쯤은 포기할 수 있을까.
어설픈 동정론으로 치장한 낮은 지능의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바로 5층. 일을 그르치는 동기가 고작 성욕이었다는데서 나를 놀라게 만들었던 5층. 내 기준, 유일하게 납득할만한 목적도 동기도 없었던 캐릭터. 인간이 지성을 갖춘 동물이라는 것을 의심케 만든 캐릭터.
5층 특성의 사람은 평소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원칙도 기준도 의견도 없이 둥둥 떠다니기 때문에 구별이 어렵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비이성적 판단을 내려 조직을 위기에 빠트린다. 그래서 위험한 존재이다. 나에겐, 이 드라마 통틀어 가장 경계해야 할 캐릭터가 5층이었다. 차라리 6층은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기라도 하지.
드라마를 보고 학습을 마쳤다면, 성장해야 한다. 나 스스로 그런 무식하고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성장이다. 늘 책을 읽고 공부해서 무식한 사람으로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어설픈 동정론자로 남아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스스로의 원칙과 가치를 확고히 해야 한다. 얕은 욕망에 휘둘려 동물과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회주의자로 남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또한, 누군가는 나를 무례한 인간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근처에는 가지 않아 주는 것, 그것도 나의 배려가 될 수 있겠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나를 견뎌내 주고 있을 테니 말이다.
생존을 위해 무례한 인간들과 섞여야 하는 원시시대에 태어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문명사회에 태어나 어느 정도 예절을 갖춘(척 이라도 하는) 사람들과 회사에서, 사회에서 부대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기에 충분하다.
그중에서 정말 태도가 좋고, 공감능력을 갖춘 예의 바른 사람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나도 또한 그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더 에이트 쇼'에 같이 참여하게 되어도 안심할 수 있는, 적어도 7번이나 3번 같은 사람으로 말이다.
흥미로운 실험 관찰 드라마, 잘 보았습니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