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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13. 2021

네, 제주도에 혼자 왔습니다 5 (마지막)

2021년 6월 3일 ~ 2021년 6월 14일

9일차 (6/11)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어디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카페 도렐에서 다섯 시간, 스타벅스에서 세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집중이 잘 돼서 좋았다.

저녁은 캠프 내에 있었지만 그동안 한번도 안갔던 묘한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는 흑돼지 돈부리 뭐 그런 느낌이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그래도 먹기전에 사진 하나 남겨놨다.

맛있게 먹었는데, 사진이 맛있게 나오지 않았구나.



10일차 (6/12)


비가 그쳤다.

도렐에서 네시간 책 읽고, 내 친구 '의자'를 가지고 나와 광장 그늘가에서 다시 책을 읽었다.

바흐를 들었다.

광치기 해변에 '의자'를 가지고 걸어 가서 펼쳐 앉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11일차 (6/13)


오전에는 카페 도렐에서 책을 읽었다.

점심은 샌드위치로 간단히 먹었다.

성산일출봉에 오르려고 슬슬 걸어갔는데 여기도 3시까지만 입장 허용한다고 한다. 이런. 제주도는 3시까지 입장인 곳이 많더라. 옳지, 그럼 더 멀리 걸어가란 소리구나. 어차피 광치기해변에서 성산일출봉까지 걸어온 김에 올레  1코스를 쭉 걷기로 결정했다.


종달리 바당길 입구 까지 걷고 돌아왔다.


저녁 7시에 캠프에서 명상 수업이 있어, 시간에 맞춰 돌아와야했다. 쭉 걷다가는 지각을 할 수도 있었다.

결국 세 시간 정도만 걷고 다시 거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시간만큼 그대로 갔으면 완주했을 것 같은데 아쉽다. 괜찮다. 모든게 뜻대로 되진 않는다. 다음에 또 걷지 뭐.


올레길  1코스를 걷다가 만난 해변
올레길 1코스. 배를 건조 혹은 수리하는 곳인가보다. 이렇게 끌어올리고 내리는구나. 신기하다.
올레길 1코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행복


캠프로 돌아와서, 예약해둔 요가 명상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은 제주 내려오자마자 듣고 싶었던 클래스인데, 강사님 사정으로 휴강이라고 해서 아쉽게 포기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시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글쎄 열려있더라. 그래서 바로 빛의 속도로 예약했다.

제대로된 호흡과 내려놓음에 대한 수업이었다. 숨쉬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현재'에 집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더라.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받지 않는 그 날을 위해 계속 수련하고 고민해봐야겠다.

간단한 스트레치와 명상에 대해 배운 것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 우리 가족과도 나중에 같이 해보고싶다.


수업 끝나는 시간이 늦어서 캠프 내 식당은 이미 모두 문을 닫았다. 아직 저녁을 못먹었는데 어쩌지. 읍내에 나가서 만두를 사서(김치,고기 반반 섞었다.) 돌아왔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만두는 맛이 없었다.

책 읽다가 잠들었다.



12일차 (6/14)


지난번 광치기 해변에서의 일출 맞이는 좀 아쉬웠다. 성산일출봉에 가려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산일출봉에 직접 올라가서 일출을 보기로 결정했다. (이름도 성산일출봉이 아니던가)

일출시간은 5:20

숙소에서 성산일출봉까지 걸어가는데 30분, 올라가는데 30분 정도 걸린다고 예상하고, 4:20에 기상 했다.

정말 아무도 없는 깜깜한 새벽, 숙소를 나섰다. 으스스하다. 열심히 걸어서 4:50 성산일출봉 입구에 도착했다.(정말 거의 뛰듯이 걸었다.) 한치 앞도 안보이게 어둡다.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니, 후레쉬를 켜고 올라가는 불빛들이 산 중턱에 점점이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열심히 올라서 5시 10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뒤도 안돌아보고 열심히 걷고, 또 너무 빠르게 뛰어 올라와서 토할뻔했다. 가져간 내 친구 '의자'를 펼쳐놓고 동쪽 바다를 바라보고 앉았다. 두근두근 드디어 일출을 보는건가.


하지만, 아쉽게도 구름이 많아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뿌연 구름 사이로 흐릿한 주홍색이 아른거리며 올라왔을 뿐이었다.

사진도 별로지만. 일단 찍었으니.

구름이 많아 제대로 못봐서 아쉽다.


그래도 노력했으니 만족한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성산일출봉에 제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해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가고 아침 6시쯤 부터 성산일출봉은 조용했다. 언제 또 이렇게 조용한 성산일출봉을 즐겨보겠는가. 사람들 왁자지껄 소리가 없으니,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새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혼자 한참을 앉아있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하산했다. 다시 걸어서 돌아왔다. 이제 이 정도 걷는건 익숙하다. (그래도 힘든건 여전하다.) 아침 7시에 숙소에 복귀해서 샤워를 하고 한숨 잤다.


오후에 내 친구 '의자'를 가지고 캠프 광장 그늘로 갔다. 책을 읽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늘에서 책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1층의 예의 그 홍콩음식점에서 국수를 먹었다. 이름은 기억 안난다.

메뉴명이 기억 안난다. 매콤하고 시원한 느낌의 국물로 맛있었다.


오늘이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서울로 출발(9:30 비행) 하려면, 버스 소요시간 1시간 30분 예상하고,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또 있으니 6시에는 기상해야 여유있을 것 같다. (나는 빠듯하게 시간 맞춰 움직이면 불안해하는 성격이다. 미리미리 움직이는게 마음 편하다.) 모든 짐을 정리해놓고, 방을 찬찬히 다시 둘러본다.

덕분에 즐거웠어. 잘 지내다 간다.

또 올게.



이렇게 여행을 마무리 했다.

행복했던 기억을 모두 글로 정리하려니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번 여행에서 읽은 책은

 모두 8권의 책을 읽었다. 그 리스트와 내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모든 날에 모든 순간에 위로를 보낸다 :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3가지를 보면 알 수 있다.  1. 자신이 한 말을 얼마나 지켜내는가  2. 불평이 얼마나 많은가  3. 많은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    

질서 너머 : 책임감을 갖고, 선을 위해 행동하자. 그러면 좋은 세상이 온다.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 부자가 되어야지, 부자처럼 보이려고 소비해선 안된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감정을 기반으로 한 인간적인 유대가 중요하다.  점진적인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 한다.  한번에 모든걸 해결할 수는 없다.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가면 결국은 성공한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 그저그런 일본식 미니멀리즘 체험서.  근본적인 고민과 철학보다는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 : 항상 기억하자. No, thanks 의 자세.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 결국 모든 건 태도의 문제다. 바른 태도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인간은 지구에 잠시 머무는 손님일 뿐. 늘 자연에 감사하자.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것은  

책을 여유있게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걷기. 처음에는 1km도 꺼려졌다. 갈까 말까 고민했다. 나중에는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더라. 나는 17km도 가볍게 걸어낸 사람이 아니던가? 작은 성취는 이렇게 중요하다. 차근차근 해내면, 어느새 실력이 늘어 있다.

나는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 취향을 정확히 확인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숙소 선택은 정말 베스트. (남들은 감옥 같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 숙소를 좋아한다.)


다음에 개선하면 좋을 것은  

조금 더 많이 걷고 싶었는데, 장비(신발, 양말, 옷, 모자, 페이스 마스크 등)가 허술했다.
오래 걸으려면 양말과 신발, 그리고 옷이 중요하다. 그런 것들이 조금 더 갖춰줬더라면 힘을 덜 들이고 걸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체력을 기르면, 주변 경치도 감상하면서 더 즐겁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걸으면, 불안하지 않게 편안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생각하고, 걷고, 읽었던 좋은 여행이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준 아내와 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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