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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10. 2021

네, 제주도에 혼자 왔습니다 4

2021년 6월 3일 ~ 2021년 6월 14일

7일차 (6/9)


눈을 떠서 누운 채 커튼을 걷었다. 하늘이 하얗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다.

원래는 오늘 마라도에 들어가볼까 했다. 

마라도 가는 배를 타려면 운진항까지 가야한다. 오며 가며 버스로만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데, 갔다가 혹시라도 배가 안 뜨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배라는게 워낙 예측불가라서.(우도 여행으로 배운 교훈이다.) 불안했다. 더군다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잖는가.

아쉽지만, 다음에 서귀포에 묵게 되면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섭지코지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섭지코지로 가는 길은 조용한 국도의 갓길 같은 느낌이다. 한적하지만 너무 외지지 않아서 마음 편히 걷는다.가면서 봤는데, 섭지코지 해변은 이상한 괴식물이 잔뜩 깔려있다. 보기 흉하다. 사진도 안찍었다. 그 바로 옆에서 캠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있던데, 정말 대단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먹고 자고 하다니. 

섭지코지 도착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섭지코지 해변을 지나 쭉 걸어서 올인 촬영지를 지나면 멋진 용암괴석 해변이 나타난다.

절경이다.

수억년을 버틴 암석들이겠지. 

바위에 앉아서 바다를 한참 넋놓고 바라본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세다. 그래서 그런지 파도가 높다.

최초의 육지 생물이 저 바다 밖으로 걸어나왔을 장면이 자꾸 상상된다. 바닷속에서 적응해서 살다가 육지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무서운 포식자, 부족한 먹이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테다.) 그 어마어마한 도전을 시도한 첫 번째 펭귄은 도대체 얼마나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파노라마로 찍었는데 퀄이 이 모양. 나는 역시 사진에 영 재주가 없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총 왕복 8Km 정도 걸었다. 산책으로 딱 적당하다.

와서 네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오늘따라 집중이 잘 됐다.)

씻고 캠프 광장에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매번 저 조합으로 마셨다. 기억에 남을 맥주와 과자. 하지만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난다. (나는 사진을 왜 저렇게 찍었을까)


분명히 며칠 전까지 한가했던 캠프 광장이었다. 거의 나 혼자 맥주를 마시곤 했다. 이제는 저녁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 다들 술과 안주 등을 사가지고 와서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늘한 저녁 시간을 즐긴다. 나는 혼자니까 어디든 좁은 구석에 앉으면 그만이다. 나에게는 책도 있고 내 친구 '의자'도 있으니.

방에 올라와서 잠들었다.



8일차 (6/10)


오늘은 올레길 2코스를 걷는다.

원래 2코스는 광치기해변이 시작이다.(라고 코스 설명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광치기 해변쪽이 숙소다. 그래서, 광치기 해변을 목적지로 걷고 싶었다. (은평포구부터 열심히 걸어서 숙소로 온다는 컨셉이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2코스 종료 지점인 은평포구로 갔다.

코스를 거꾸로 걸었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셈이다.



시작하는데 은평포구에서부터 웬 개가 쫓아왔다. 누렁이였는데, 크기가 제법 컸다. 내 무릎 정도까지 올라올 정도로 컸다. 나는 개를 그닥 좋아하진 않아서, 불안했다. 왜 자꾸 쫓아오지. 어디까지 쫓아오는 걸까. 먹을 것을 달라는 걸까. 이러다 숙소까지 몇 시간을 쫓아오는 건 아닐까.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쫓아오진 않겠지. 쫓아오다 화가 나면 나를 꽉 무는 건 아닐까. 

진짜 한참을 쫓아왔다. 심지어 횡단보도를 건너서까지. (날 따라오기 위해 파란불 신호를 기다린걸까.) 한 30분도 넘게 쫓아온 것 같다.

나는 아마 그런 길동무를 원하진 않나보다. 내 성격이 그런가보다. 왜 사람들이 나와 친해지기 어렵다고 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다고 하는지, 냉정하고 차갑다고 하는지. 그게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가 되었을지, 걸으면서 생각해봤다. 나는 왜 길동무를 원하지 않고 불편해 하는 걸까.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은데, 이래서는 할 수 있을까 싶다. 아직 나의 가면이 너무 얇은가보다.

누렁이는 한참을 따라오다가 다시 돌아갔다. 

미안. 

더 다정한 사람 따라가줘.


이 코스는 바닷가보다 내륙 마을을 많이 돌도록 구성되어 있더라.

오름도 두개나 올랐다. 몇 번 이야기 했지만, 나는 겁이 많다. 나무가 울창하고 그늘져 어두컴컴한 산을 혼자 올라가려니 무섭기도 했다. 걷는 건 좋은데, 무서운 건 싫다. 마을은 인적없이 너무 적막했다. 가끔 만나는 민가의 개들은 왜 그리 나를 보고 짖어대는지. 홀로 걷는 길이, 마치 인생처럼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다.


요새 만나는 제주 해변은 뭔가 해초(?)도 아닌 이상한 배추같은게 많아서 보기 좋지 않았다. (섭지코지의 그것과 같았다.) 이상 기온 탓인지, 외래 생물의 습격인지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보기 흉한 건 사실이다. 그 해초(?) 때문에 이 코스는 다시 걸으러 오지는 않을 것 같다.


2코스 중간, 광치기 해변에서 단축로로 빠지면 바로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숙소를 지나 한참을 더 걸어 완주할까? 아니면 숙소로 들어가는 가까운 길을 택해,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마실까? 광치기 해변을 지나면서 수백번 고민했다. '누가 시켜서 걷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 고민을 하지?'

하지만, 광치기 해변을 그대로 지나 결국 완주했다. 

왜냐면, 완주하지 않으면 나에게 창피할 것 같았다. 창피하면 오늘 저녁에 잠을 못 이룰 것 같았다. 그깟 한두시간 더 걸으면 되는 걸 왜 포기해. 포기하지 않고 다 걸어낸 나에게 칭찬을 해줬다.

총 네 시간 정도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 서류를 하나 급하게 떼서 제출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주민센터까지 또 걸어다녀왔다. 3km 추가. 이 때는 예정되지 않았던 길이라, 정말 힘들었다. 마음의 준비와 다짐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역시 무슨 일을 하든, 늘 미리 예상을 해보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

돌아와서 샤워하고 내려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오늘은 웬일인지 맥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많이 걸어서 뿌듯한 날이다.

책 읽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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