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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06. 2021

네, 제주도에 혼자 왔습니다 3

2021년 6월 3일 ~ 2021년 6월 14일

6일차 (6/8)


그간 제주에 몇 번을 왔지만, 우도는 단 한 번도 못 들어갔다.

아무래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는 귀찮음 때문이었을거다.


오늘은 우도에 들어가서, 올레길 1-1코스를 걸어보려고 한다.

오전 내에 한 바퀴 완주하고 섬에서 나와 점심은 제주 본 섬에서 먹는 게 목표다. 배를 타야하니 일찍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고 출발했다. 오전 8시에 성산항에 도착했다. 여기 오는데도, 버스를 기다리느라 30분정도 기다렸다. 차가 있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걷기로 한 여행이니, 이런 부분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조금 더 빨리 일어나면 된다. 기다리는 것도 여행이니까.


성산항에 안개가 심하다. 조금 과장해서 정말 한 치 앞이 안보이는 수준이다. 불안하다. 배를 타 본적이 별로 없지만, 이런 날 배가 바다로 나가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매표소에서 왕복 티켓을 샀다. 승선표(?) 같은 것에 인적사항도 썼다. 그거 내고 타야한단다.

선착장에 갔더니 배가 두대 서있다. 번갈아 출발하나보다.

티켓을 냈더니, "오른쪽 배에 타세요." 라고 알려주신다.

배에 오른다. 배에는 차도 계속 올라 타고 있다. 자동차를 가지고도 갈 수 있나보다.

계단을 걸어 배 2층에 올라 갔더니, 엄청 넓은 방 같은 곳에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해놨다. 앞에는 TV가 켜져있고, 시끄러운 방송에서 뭔가 떠들어댄다. 에어컨도 틀어놔서 시원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TV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구석에 혼자 자리를 잡는다. 매일 뙤약볕 아래 걷기만 하다가,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가는 방 안에 앉아있자니 난데없는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9시에 출발이었는데, 방송에서 출발 지연 안내가 나온다.

안개가 너무 심해서 등대가 안보인단다. 환불 할 사람은 얼른 환불하고 돌아가란다. "에이~ 뭐야~" 웅성웅성. 사람들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동요한다. 3/4 정도 되는 승선객이 순식간에 모두 우루루 내려서 돌아갔다. 제주도에 관광하러 굳이 시간을 쪼개서 왔을텐데,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그들에게도 아까웠으리라.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나는 어떡하지? 내일 다시 올까? 오며가며 들인 시간이 아까운데? 에이,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10분, 15분, 20분이 더 지났다. 안개가 그대로인 것 같다.

갑갑한 마음에 방 밖으로 나가본다. 오, 근데 저 멀리 어선이 보인다. 우도에서 넘어오는 어선 같은데? 배 다닐 수 있는거 아닌가?

순간 배가 움직인다.

드디어 우도로 출발한다.


살다보면 이렇게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그대로 내려서 다른 관광지로 갈지, 아니면 기다려서 목표했던 바를 이룰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내리는 것이 맞을까, 기다리는 것이 맞을까. 당연히 정답은 없다. 내가 20분이 넘게 더 기다렸는데, 아니 1시간을 기다렸는데, 결국 배가 움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 내 선택은 틀린걸까? 옳고 그른건 없다고 생각한다. 선택을 올바른 방향이 되도록 만들면 되지 않을까.

배에서 기다리며 이런저런 여러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안개가 심해 배가 출항하지 않아 낭패를 본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얻어갈 수도 있다. 또 언제 배에서 그렇게 오래 버텨보겠는가.

인생이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을꺼다. 선택의 연속.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노력하고 싶다.


우도에 도착했다.

이제 천천히 올레길 1-1코스를 돌아본다. 섬을 한바퀴 돌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다.

제주도와는 또 다른 묘한 매력이 있다.
초원도 있다. 이따금씩 풀을 뜯고 있는 말을 만나기도 했다.
해안 도로를 따라 걷는다.
해안 도로, 구름이 많아 걷기 정말 좋다. 다행이다.
바다보다는 이런 내륙의 길이 더 운치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물어서 뭔가 으스스하기도 하다. 날씨 때문일수도.
돌로 얕은 벽을 쌓아 길을 내주었다.
마을을 지나간다.
마을 휴게소 겸 정자에 앉아서 잠깐 쉰다.
뭔가 해수욕장 이었는데, 이름이 기억 안난다.
이 앞에 펜션 하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높은 산에서 줄 타고 쭉 내려오는, 그 뭐더라. 암튼 그게 있었던 흔적 같다.
올레길에서 빠질 수 없는 오름.
올라왔더니 전망이 좋다.
탁 트이는 전망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꼭대기에 등대. 깜깜한 망망대해의 배 위에서 사람들은 등대의 불빛을 보고 어떤 안도감을 느꼈을까.
초원에 말들이 뛰놀고 있다.
말이 도로로 나왔다. (여기까진 예상하지 못했는데.)
평화로운 말 가족


전부 도는데 3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성인 남성 빠른 걸음. 중간에 잠깐 카페에서 땅콩 아이스크림 하나 먹느라 20분 정도 지체.) 우도는 하루 정도 투자해, 열심히 한 바퀴 돌기 괜찮은 섬이었다. 내륙과 해안을 오갈 수 있도록 구성된 코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늘에 적당히 구름이 있어서 걷기도 참 좋았다. 제주에 또 한번 더 온다면, 꼭 다시 찾아와 걷고 싶다.

배를 타고 다시 제주로 들어왔다.


그냥 숙소로 가기 아쉬워서, 사려니숲길을 걸어보려고 성산항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서 사려니숲으로 왔다. (그냥 숙소로 갈껄, 피곤한데 왜 또 걸을 생각을 했을까.)

왔는데,

모기 천국. 모기가 왜 이렇게 많지. 그것도 산 모기가. 숲이니까 많겠구나. 모기들 입장에서는 내가 불청객이겠구나. 돌아가야겠다. 조금 걷다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40분 기다린건 함정)


돌아와서 씻고 누웠다.

저녁에 비가 조금 내렸다.

알차게 보낸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정착한다면 매일 이런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까?

피곤해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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