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사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2024 뉴발란스 마라톤에 같이 나가자는 연락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조금씩 꾸준히 뛰었지만, 이젠 예전처럼 오래, 빨리 뛰지 못한다. 괜히 같이 나갔다가 민폐가 될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5km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승낙했다.
하지만 민폐가 될 일은 없었다.
뉴발란스 마라톤 신청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나는 분명 신청 오픈하자마자 접속했는데, 대기열이 있었다. 대기열을 단계마다 계속 기다려가며 약관동의부터 인증까지 차례차례 진행했는데, 결국은 제한된 인원이 초과되었다며 신청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서비스를 사용하며 대기열을 많이 경험해 볼 때마다 느낀다. 대기열 시스템이라는 게 서비스 입장에서는 가장 간편한 통제 수단이겠지만, 사용자 측면에서는 '오랜 시간을 공들여 실패하는 경험'이라는 웃지 못할 기억을 안겨준다. 브랜드 마케팅 에서는 이걸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구현했을지 조금 더 고민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아무튼,
러닝 인기가 대단하다더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낙심하던 차에 후배는 ‘그럼 다른 대회라도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안될 것 없지, 오케이 뭐라도 해보자.
그래서 다른 대회에 신청했다.
뛰어봅시다.
아침. 봉은사역.
하늘이 참 예쁘다. 이제 드디어 가을인가 싶다.
아직 출발 한참 전인데도 봉은사로는 뛰려고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가 오히려 반갑다. 선선한 게 오히려 뛰기엔 좋다.
출발이 임박했다. 다들 출발선 앞으로 모여든다.
진행자의 출발 신호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간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열심히 달린다.
뛰다 보니 어느새 덥지도 춥지도 않다. 이렇게 날씨가 좋다니. 행운이다. 한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뛰면서도 눈이 행복하다. 참 멋진 강이다.
끝.
기분 좋게 5km를 뛰었다.
나는 이제 5~6km를 뛰면 딱 기분 좋다. 빨리, 멀리, 오래 뛰는 걸 자랑으로 삼으며 치기 부릴 나이는 지났다. 즐겁고 행복하게 적당히 뛰고 싶다.
속도 욕심은 이제 그만. 나는 천천히 느리게 뛴다. 이번 대회 연습을 하면서 예전에 뛰려고 선곡해 두었던 빠른 음악들은 모두 삭제하고, 내 페이스에 맞는 적당한 템포의 음악들을 다시 찾았다. 노이즈의 ‘어제와 다른 오늘’이나 쿨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 정도 속도가 딱 좋더라. (나는 최신 음악보다 저 시절의 음악을 더 좋아한다)
달리기가 끝나고, 바로 옆 음식축제에서 몇 가지 음식을 사 왔다.
인산인해. 테이블이 만석이라 그냥 바닥에 앉았다. 이런 날은 아무 데서나 먹어도 좋다.
탕수육, 짜장면, 갈비, 만두 등 다양하게 사 왔다. 뛰고 땀 흘린 뒤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음식을 재미있게 떠들며 실컷 먹었다.
내가 과장 때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처음 만났던 친구였는데, 어느새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애기 아빠가 되었다.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닌 지 10년이 다 된 선배에게 마라톤 대회를 제안하는 후배는 흔치 않다. 덕분에 즐겁게 뛰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두 다리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 주변엔 감사할 일들이 넘쳐난다. 그걸 모른 채 생을 마감하는 일이 없도록,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날,
오늘도 잘 뛰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