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을 좋아한다.
단순히 내 피붙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좋아한다. 비슷한 나이대의 타인으로 만났다면, 친구가 되고 싶어서 내가 먼저 다가갔을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나도 그런 점들을 아들에게 배우고 싶다.
(단, 나는 아들의 학교 생활을 같이 경험하진 못했다. 이는 집에서 하는 행동 기준이다.)
다정하다.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인다. 짜증이나 화를 낼 법한 순간에도 최대한 다정하고 친절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맛없는 음식 만들어줘도, ‘오, 맛있네~’라고 추임새를 넣어주며 잘 먹는다. 무슨 도움을 받거나 배려를 받으면, 'ㅇㅇ 해줘서 고마워' 라고 꼭 말한다.(나에게도) 그러면 나는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차분하다.
호들갑 떨지 않는다. 이건 내 개인적인 취향과도 관련이 있는데. 아들은 절대 흥분해서 감정의 기복을 분출하지 않는다. 물론 당연히 어린이답게 기쁘고, 화나고, 슬플 때 표현하긴 한다. 하지만 그 폭이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널뛰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아들을 대할 때 항상 예측 가능하다.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조리 있게 설명해서 듣는 나도 이해가 잘 되고, 언제나 흥분하지 않아서 상대하는 내 마음이 편하다.
배려한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습관이 멋지게 배어있다. 엄마아빠와 맛있는 것을 먹을 때나, 무엇이든 먼저 제안하고 배려한다. 내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면 늘 ‘같이 갈까?’라고 물어봐준다. 뭔가 먹을 때는 하나 집어서 내 입에 먼저 넣어준다. 나는 아들이 이렇게 꾸준히 커서 '젠틀맨'이 되길 바란다.
성실하다.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다.고 해야 하나. 학생으로서, 그리고 한 집의 아들로서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것들을 묵묵히 잘 지키며 해 나간다.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나는 묵묵히 성실히 해 나가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아들이 그런 사람으로 보여 멋지다. 이 점은 나도 꼭 아들에게 배우고 싶다.
가진 것에 만족한다.
그는 마트에서 뭘 갖고 싶다고 떼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가진 것을 잘 쓰고, 이용한다. 필요한 게 있다면 충분히 고민하고 부탁한다. 늘 그렇듯 차분하고, 조리 있게 원하는 내용을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저 남들이 한다고, 유행이라고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그 점이 어른스럽고 기특하다.
나랑 잘 놀아준다.
요새 내가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아빠, 캐치볼 하자'다. 아들은 심심하면 캐치볼을 하자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글러브와 공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초등학고 저학년 때는 제대로 던지지 못하던 공이었는데, 요새 아들은 제구가 좋다. 투구에 힘이 실려서 공이 제법 묵직하다. PC방에도 나랑 같이 가준다. 요새 같이 스타크래프트를 하는데 아들은 저그를 열심히 한다. 넷플릭스 강철부대도 같이 봐준다. 아들은 특수부대를 좋아한다. 유튜브도 같이 보는데 먹방도 보고, 게임방송도 본다. 라면 뽀글이도 같이 먹어준다. 얼마 전에는 국밥도 같이 먹으러 가줬다. 매운 국밥 한 그릇 뚝딱하는 아들을 보니 새삼 대견하다. 같이 차를 타고 갈 때, 내가 듣는 옛날(90년대) 노래들도 잘 들어준다. 어떤 때는 ‘노래 좋은데?’하고 맞장구도 쳐준다.
잘 웃는다.
웃는 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유머야 말로 인간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믿는다. 아들은 별 것 아닌 것에도 잘 웃는다. 내 실없는 농담에도 낄낄거리고 웃어준다. 그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을 수 있다. 덕분에 나는 한 번 더 웃는다. 지금처럼, 언제나 잘 웃는, 밝은 표정의 어른으로 커갔으면 좋겠다.
많은 이유들을 주저리주저리 썼지만.
사실은 그냥 좋다.
별 이유 없이 좋다.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좋다.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우리 친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