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표정이 좋지 않다.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니 사정이 있었다.
며칠 전 친구들끼리 놀면서 본인만 부르지 않은 걸 뒤늦게 알게 되었고,
그게 꽤 섭섭했나 보다.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에 나도 그랬다. 친구들이 서운하게 행동하거나, 혹은 나만 빼고 모임을 갖는다거나 하면 어쩐지 화가 났다. 배신당한 듯한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고 며칠 동안이나 우울했다.
그렇게 애틋했던 친구들이었는데.
그 시절 친구들 대부분과 거의 연락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
좀 웃기다. 그땐 그렇게 섭섭해했으면서 말이지.
단지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는 이유로 '친구'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때 대체 왜 그랬을까.
'시절인연'이라는 단어가 있다.
인연이 닿으면 만나고,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그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내고 즐거웠다면, 지금 멀어지고 헤어졌더라도 섭섭해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 닿을 인연이라면 또 만나게 되어 있다.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친구들이 안 부르면 그냥 그런 거다. 부르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부를 생각조차 안 했던 거다.
거기에서 무슨 이유를 찾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모두가 날 좋아할 수는 없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된다.
인연이 거기까지인 것.
나는 요새 이런저런 일로 생각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이런 궁극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내가 직장을 관두고, 재산을 잃고, 사회적 지위를 모두 상실한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내 주변에 남을까.
(나이가 나이다 보니, 실제로도 연락이 뜸해지고 슬슬 관계가 정리되고 있다. 중년의 나이가 체감되는 것이다.)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누가, 나라는 존재 그 자체와 인연을 이어가줄까.
나에게서 무언가를 원하고, 그럴 필요가 있어서 나를 만나주는 '지인‘은 결국 사라진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다.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언젠간 결국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인생을 통틀어, 인연은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는 것.
나와 동갑이든, 나이가 적든, 나보다 나이가 많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세대를 초월하는, 나와 결이 맞는, 만나면 언제나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소중한 그 인연이 바로 '친구'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을 낭비하지 마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겨두어라.
- ‘초역 부처의 말’ 중에서
아들아.
진짜 친구는 네가 어떤 상황이더라도 결국 곁에 남는다.
친구는 네가 어려울 때, 오히려 더 너를 찾아줄 거야.
그러니,
지금 애써 집착할 필요 없다.
떠나간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
너의 인연은 반드시 나타난다.
휴대폰 연락처의 수백 수천 개 전화번호나,
카카오톡의 그 많은 친구목록은 다 부질없다.
결국 다 사라질 인연.
(네트워크나 인맥 자랑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더라.)
좋은 친구는 인생에 한두 명이면 충분해.
그 소중한 인연과 함께 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나가렴.
그러니.
그런 친구가 나타난다면 정말정말 소중히 대해줘라.
그거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간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리고 이거 하나 알려줄게.
잊지 마.
아빠는 언제나 영원히 네 친구로 남을 거라는 거.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인맥 말고, 진짜 '친구'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