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자동차와 동일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자전거 사고 시에는 교통사고법의 적용을 받는다.
좀 그럴듯하게 말하면 이렇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마에 속해, 자전거는 '차'로 분류됩니다.
'차'는 차로에 맞게 주행하고,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차마는 도로교통법 27조에 의거, 어디서든(차도, 자전거전용도로, 겸용도로 등 모두 포함)
보행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자전거보다 걷는 사람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양재 탄천길을 걷고 있었다.
걷기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같이 붙어있다.
이렇게 생겼다.
공사 중인 구간이 있어 좌우로 오가며 걸어야 했다.
자전거가 쌩쌩 달려 어쩐지 위험하다.
아이들도 걷는 길인데, 이렇게 빨리 달려도 되나 싶다.
나는 공사로를 피해, 다른 길로 걷다가 보행 도로로 들어가기 위해 자전거 도로를 지나야 했다.
그냥 건너도 되지만, 그래도 횡단보도를 찾았다. 도로는 도로니까.
횡단보도를 찾아서 건넜다. 두세 발자국이면 자전거 도로를 지나 보행자길로 들어간다.
딱 아래 사진 정도의 폭이었다. 도로 모양도 비슷하네.
그렇게 보행자로로 진입해서 2초쯤 지났을까
내 옆으로 자전거 한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그 자전거 운전자는 나를 쳐다보고 "개*끼야!"라고 소리치며 쌩 하고 가버렸다.
응? 갑자기?
나는 잠깐 서서 생각했다. 왜지?
아마 내가 횡단보도를 지나갔기 때문에 자기가 속도를 줄여야 했던 게 화가 났나 보다.
하지만 줄인 속도도 어마어마했다. 자전거 과속이 이슈라더니. 심지어 어떤 자전거는 브레이크도 없이 달린다더니. 바로 이런 거였구나.
나는 분명히 횡단보도로 좌우를 보고 건넜고, 횡단보도에는 자전거 정지선도 있었고, 자전거 속도 제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렇게 빠르게 보행자를 위협하며 달리고 욕설까지 하다니. 저러다 사람이라도 치면 어쩌려고.
마침 기분이 안 좋았는데, ‘너 잘 걸렸다.’ 싶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뛰어가 자전거를 잡고 '왜 과속하며, 보행자의 안전을 무시하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무례한 사람은 이미 떠나갔는데, 왜 나 혼자 길에 서서 화를 내고 있는 거지? 내가 화를 낸다고 저 사람이 알기나 할까?'
그래, 딱 5분만 참아보자.
깊게 호흡했다.
일부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심호흡하며 천천히 걸었다.
마치 에스키모 인처럼 말이다.
그랬더니, 몇 분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가 가라앉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화는 결국 뇌의 호르몬 작용에 불과하다. 어떤 식이냐면.
화가 나면 분노 호르몬이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부위를 마비시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분노 폭발 상태에서는 논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전두엽' 기능이 순간적으로 마비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확 쏟아져 나와 15초 만에 최고 농도에 달한다. 30초~3분간 전두엽이 마비된다. 거기에 휘둘려 불같이 화를 내고, 태도가 망가진다면, 우리는 호르몬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조금만 참으면 모든 건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타인의 행동이나, 말,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화낼 것 없다.
그러려니 하라.
요새 'let them theory'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아마 아래 책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화내지 말고, ‘let them’하라는 거다. 아직 번역본이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나오면 꼭 읽어봐야겠다.
let them을 굳이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러라 그래~’가 되겠다.
(양희은 님이 쓴 같은 제목의 책이 있던데, 비슷한 내용이려나 모르겠다.)
누군가가 당신을 화나게 하는가?
불편하게 하는가?
왜 저러나 싶나?
그렇게 살다가 깨우치지 못하고 사라지게 놔두자. 얼마나 불쌍한가.
그 시간에 당신은 더 행복한 걸 생각하라.
정의롭고, 자애로운 사람이 되자.
한 단계 더 깨달아 성숙한, 이성적이고 우아한 사람이 되자.
화낼 필요 없다.
그들은, 그냥 그러고 살라고 내버려 두자.
그러면 된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