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온다.
누구지.
아들이다.
“아빠, 학원 끝나고 가는 길인데. 저녁에 쌀국수 어때?”
아들이 추천하면 가야지.
그래서 최근 눈여겨봐 두었던 쌀국수집 ‘꾸아‘를 방문했다.
이 가게 근처는 오피스가 많아서 주말 밤에는 동네가 조용하다.
특히 일요일 저녁은 한산하기까지 하다.
꾸아는 일요일까지 늘 영업을 하고 있어서 오며 가며 눈길이 간다.
주변 가게에 불이 다 꺼져있는데도 이 가게만 홀로 환하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새는 사람들'과 같은 분위기다.
그 분위기가 제법 마음에 든다. 나는 이런 적적하고 쓸쓸하며 고독한 늦은 밤의 감성이 좋다.
하지만 이 가게, 평일에는 사람이 늘 가득하다.
특히 점심에는 웨이팅이 기본.
사람 없고 조용한 식사를 원한다면 일요일 저녁이 적당하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일요일 저녁, 이 가게를 찾았다.
뭐라고 불러야 하나.
미국식 쌀국수 느낌인 건가.
보통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인테리어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집기가 정갈하다.
전체적으로 일관된 톤을 갖추고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
제로 사이다로 먼저 목을 축인다.
'고기듬뿍 쌀국수'가 나왔다.
딱 보기에도 고기가 크고 실하다.
국물이 진하다.
어디서 봤는데 어디더라. 이런 느낌의 국물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 명동칼국수 국물이랑 비슷하다.
냄새도 모양도.
고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건 흡사 스테이크.
칼국수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진하고 고소하고 짭짤하다.
맛있다. 기존 먹었던 쌀국수와는 살짝 결이 다르다.
1.5배 더 농축된 느낌.
‘새우볶음밥‘
아들이 한 숟가락 떠먹고 말했다.
“먹어봤던 볶음밥 중에 제일 맛있다.“
볶음밥 마니아인 아들이 그렇게 말하면 인정이지.
색깔만 보고 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적절히 간이 잘 되었다.
고소하게 볶아졌다.
계란이 잘 어우러졌으며 새우는 큼직하고 통통하다.
‘꿔이’
빵 같은 건데, 뜯어서 쌀국수 국물에 찍어먹는 거란다.
난 처음 봤다.
찍어먹어 봤다.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나는, 빵은 오롯이 따로 먹는 게 맛있다.
컵에 그려진 로고가 귀엽다.
아무 컵이나 주는 게 아니어서 마음에 든다.
‘분짜’
소스가 짜다.
면을 담가먹으면 너무 짜다.
면 위에 소스를 뿌려서 먹으니 적당하다.
소스에 들어있는 고기가 큼직하다.
달고 짜다. 너무 자극적이어서 죄책감이 들 정도.
면에 소스를 살짝 적셔서 야채, 고기와 함께 집어 먹었다.
우리가 아는 그 분짜 맛. 양념돼지갈비 맛.
튀김, 속이 꽉 찼다.
고수를 추가해서 쌀국수에 더 넣어보자.
고수의 샴푸 향기가 진하다.
느끼한 국물과 잘 어울린다.
어릴 땐 몰랐던, 고수의 그 맛이 중독적이다.
다 먹었다.
다양한 쌀국수집이 많이 생겨서 이미 춘추전국시대인 상황에, ‘꾸아‘는 새롭고 독보적이다.
너무 쿰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진한 국물과 큼직한 고기가 푸짐해서 든든한 한 끼로 손색이 없다.
쌀국수와 칼국수, 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 맛.
덕분에 칼국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한 그릇으로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볶음밥, 분짜 등도 수준 이상의 맛을 선사하니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진 않겠다.
아들, 메뉴 추천 고마워.
오늘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