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오늘도 한참을 걷는 중이었다.
걷다보니 어느새 왕십리 근처였다.
길 건너편을 우연히 쳐다봤는데, 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뭔가 궁금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굳이 길을 건너 가까이 가봤다.
’아오내순대‘
상호가 묘하다.
간판에 적힌 '어서오십시요'가 도발적이다.
여긴 어쩐지 맛있을 것 같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마침 배도 고팠다.
홀린 듯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노포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한, 오래된 듯 하지만 깔끔한 실내.
노포를 흉내낸 것인가?
나는 이렇게 나무로 된 인테리어 마감이 좋다.
일단 앉았다.
아오내순댓국을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양념과 물컵 등이 나무로 된 보관대애 정갈하게 놓여있다. 깔끔하다. 먼지하나 없다. 이런 디테일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어쩐지 이 집, 느낌이 좋다.
뭔가 힙한?. 왜지, 대체 왜 이런 분위기가 나는 거지.
가게 안에 흐르는 발라드 위주 노래 때문일까. 팀의 ’사랑합니다‘ 부터 ‘나의아저씨’ OST까지. 선곡이 좋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센스가 있군.
밑반찬이 나왔다.
더도 덜도 없는 깔끔한 구성.
드디어 나왔다.
아오내순대국.
응? 근데 국물이 색다르다.
맑다.
많은 순댓국을 먹어봤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한 입 먹어보니, 오오 기가 막히다. 깔끔하고 적당히 기름진 짭조름하고 뜨끈한 국물. 순댓국 특유의 텁텁함은 전혀 없다. 순간 하동관에 온 줄 알았다.
게다가 미나리까지.
시원한 복국 컨셉인건가.
향이 좋다. 순댓국에 미나리가 이리 잘 어울렸나.
병천 순대.
고기도 쫄깃쫄깃 실하다.
밥도 잘 되었다.
진밥이 아니다. 적당히 고슬고슬.
하지만, 나는 이 맑은 국물을 전분기로 해치고 싶지 않다. 오늘은 이 국물 그대로 끝까지 즐기고 싶다. 그래서 밥은 말지 않고 따로 먹었다.
무생채.
요새 가게들 김치가 너무 달다.
음식에 설탕을 쏟아붓는 유행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여긴 달지 않아서 좋다.
계속 감탄이 나오는 국물.
국물만 떠서 먹고 또 먹는다.
미나리와 순대.
미나리와 고기.
쌈장을 얹어도 좋다.
고기가 부드러워서 야채와 잘 어울린다.
잡내는 당연히 하나도 없다.
국물.
이 집의 에센스는 국물이다.
그런 본질적인 의미에서, 이 가게의 경쟁자는 ‘백암농민순대’나 ‘청와옥’이 아니라 ‘하동관’이나 ‘이남장’임이 분명하다.
고기가 어떻게 이렇게 딱 적당히 쫄깃하고, 깔끔한 건지?
순댓국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다.
정신없이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다 먹었다.
그저 지나가다 들른 가게인데, 이렇게 맛있는 순댓국을 찾다니 오늘 행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감사하다.
유명한 인기 가게들의 진하고 탁한 순댓국 국물에 지겨워질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 또 자주 방문할 곳을 만났다.
이렇게 말하면 나중에 후회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한 줄 감상평을 남기자면.
'하동관보다 낫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