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많은 것이 해결됩니다
한양대에 누굴 좀 만나러 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기왕이면 걸어보면 좋겠다. 강남역으로 일단 걸어가기로 한다.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리겠다.
대학교는 역시 젊고 활기차다.
모두들 온몸에서 에너지를 발산한다.
잠시 들렀을 뿐인데도 기분이 좋아진다.
비가 내린다. 마침 학교 정문에 지하철역이 있다. 비도 오는데 편하게 지하철을 타고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0.1초 정도 들었다.
에이, 결심했으니 걷자.
우산 쓰고 걸으면 되지.
중랑천을 건넌다.
비가 내리니 물살이 거세다.
동네가 아기자기하다.
여기 뭐 힙한 동네인가.
서울숲으로 들어왔다.
비가 내리니 공원이 한적해서 좋다.
공기도 깨끗하다.
사진 찍고 싶어지는 숲이다.
공원 안에 호수도 있다.
성수대교를 건너보자.
성수대교는 약 1km 길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다리 밑 차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구름과 다리, 자동차가 마치 게임 속 장면 같다.
한강의 물길이 넓고 바르다.
거대한 강의 흐름에 어쩐지 숙연해진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건, 결국 겸손함이다.
한참을 걷는다.
다리 건너 압구정에 들어오니, 역시나 교통체증이 심하다. 여긴 차를 몰고 올 곳은 아니다.
혼란하다. 저렇게 자전거와 킥보드를 바닥에 던져 쓰러뜨려 놓는 인간의 심리는 무엇일까. 기본적인 예절이나 공중도덕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아예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사회에 많아진다. 미드 ‘트루 디텍티브’ 시즌1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 행복한 법이지.”
해가 진다.
조금씩 어두워진다.
신사역이다.
어느새 가로등이 켜졌다.
KBO 공식 매장인 듯하다. 아들이 엘지 트윈스 팬인데, 조만간 여기 데려와봐야겠다. 좋아하겠지.
논현역이다.
영동시장. 여기 맛집이 많다. 오늘은 그냥 지나간다. 다음에 와봐야겠다.
그나저나 비 오는 저녁, 도시의 색감이 좋다.
저 멀리 교보타워가 보인다.
비 온 뒤 거리의 분위기가 어쩐지 센치하다.
걷기에 느낌이 좋다.
신논현역.
강남역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밤의 도시를 걷는 건 운치 있구나.
젖은 아스팔트에 비친 붉은 브레이크 등이 예쁘다.
강남역에 도착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세 시간 정도 걸었다.
비 오는 길을 걷는 건, 날씨가 맑을 때 걷는 것과 또 다른 맛이 있다.
물론 우산을 쓰고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비 오는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이 그 불편함을 앞선다.
마냥 좋은 것도 없고,
마냥 나쁜 것도 없다.
좋은 게 있으면 또 나쁜 것도 있고,
나쁜 것 같아도 또 좋은 게 있다.
이렇게, 걷기에서 무상(無常)을 또 배웠다.
옛 구도자들도 이렇게 걸으며 깨달았겠지.
오늘도 잘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