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INFJ 여행기

부산, 광안리 바람에 묻고 온 하루

by 이서


부산에 일이 있어서 간다.

첫 차를 타야 해서 아침 6시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섰다.


고속버스터미널에 왔다.


사선으로 잘 정돈된 버스들이 죽 늘어섰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른 아침부터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예전엔 다닥다닥 좁은 좌석이었던 것 같은데, 요새 버스는 여유 있고 넓어서 좋다. 몇 시간이고 타고 멀리멀리 갈 수 있겠다.


서울은 흐렸는데, 좀 내려오니 날씨가 좋다.

산이 많다. 초록색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포유류로 진화하며 살아온 인간 무의식 저 편에, 숲에 대한 동경이 여전히 남아있는 걸까.


몇 시간 달리고, 휴게소에 들렀다.

기사님이 15분을 주셨다.


인간은 남겨진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알차게 움직인다. 게으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 동물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에 의미가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생하는 인간에겐 게으름과 나태, 무의미만 남을 뿐이다.


나도 15분을 알뜰히 의미 있게 써야겠다.

화장실도 갔다가 주변 구경도 하고 간식도 사보자.


휴게소에는 늘 이런 만물상 같은 가게가 있더라.

없는 게 없다.


간식으로 공주밤빵을 사서 다시 차에 올랐다.

정말 밤이 들어있을까.

두근두근.


밤맛 앙금인가 보다.

역시 진짜 밤을 넣기엔 단가가 안 맞았겠지.


버스는 다시 달린다.

산골 마을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한참을 더 달렸다.

강인가? 부산이니까 바다인가?

아무튼 거의 다 왔나 보다.


부산 서부 터미널에 도착했다.


역 바깥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인다.


갈 곳이 있어 지하철을 타러 간다.

2호선 사상역으로 내려가자.


목적지에 도착해서 친구 얼굴을 보고 인사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능하다면 찾아오고 싶었다.

올라와서 조만간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힘내길 빈다.


근처에 바닷가가 있다고 해서 혼자 걸어왔다.


광안리 바다가 멀리 망망하다.

끝없이 반복되는 파도소리에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낭만이 있다.

나는 아득한 바다를 보면서 한참 멍하니 앉아있었다.


모래밭을 걸었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스팔트로 올라갔다.

역시 낭만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바람을 느껴봤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 돌아간다.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근처 지하철역으로 왔다.

2호선 광안역.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이렇게 큰 건물에 다들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건 마치 스타트랙에 나오는 포탈 같다.


올라오는 길에 다시 휴게소를 들렀다.

나는 역시 시간을 알차게 썼다.

그나저나 하늘이 심상찮다.

비가 오려나.


버스에서 잠들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깼다.

앞을 보니 폭우가 차 앞유리를 때리고 있었다.

와이퍼가 소용이 없을 정도다.

나는 다시 잠들었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는데, 집에 가면 밤 10시가 넘겠군. 부산이 생각보다 멀다.

그래도 친구 얼굴을 봤으니 됐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터미널 밖은 조용하다.

이제 집으로 간다.


부산에는 처음이었다.

짧게 머물렀지만, 어쩐지 마음에 드는 도시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다음에는 며칠 휴가를 내고 방문해서 여기저기 부산 골목길을 걸어보고 싶다.


오늘도 잘 다녀왔습니다.



이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구독자 237
매거진의 이전글걷기, 한양대에서 강남역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