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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망치는 건 '문화'다. 당신은 말할 수 있는가?

by 이서


묻겠다.

당신은 상사의 지시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의 조직은 그럴 수 있는 조직인가?


문제는 시스템이 아닌 '문화'이다. 이는 단순한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용기 부족으로 치부하지도 말자.


왜 많은 조직과 리더들은 '말할 수 없는 문화'를 만들어놓고, 회사의 성장과 제품의 발전을 구성원에게 강요하는가?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 되는 조직은 그대로 침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말할 수 없는 문화'의 조직이 어떻게 대형 사고를 일으켰는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 보겠다.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

1997년 8월 6일. 인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801편 여객기가 괌에서 착륙을 시도하던 중 추락했다. 228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였다. 이 사고의 원인은 단순한 조종 실수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수직적인 조직문화(hierarchical culture)'때문이었다.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의 공식적인 내용은 이렇다.

•사고 항공편: 대한항공 801편, 인천→괌

•사고 원인: 조종사의 착륙 접근 실수 + 계기 착각 + 적절한 교신 실패

•결과: 254명 중 228명 사망 (대형 참사)

•공식 원인: 조종사 과실(인간 오류), 불충분한 판단 공유


https://www.koreadaily.com/article/20220808211120667


원인으로 지목된 '조종사 과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였다. 하지만 조종석에 기장과 부기장 두 명을 앉혀놓는 이유는 상호 보완하며 실수를 방지하고, 안전하게 운행하라는 의미이다. 두 명이 동시에 실수를 저질렀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왜 기장과 부기장은 서로 실수를 상호보완하지 못했을까.


당시 부기장은 기장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악천후로 인해 착륙 접근이 위험하다는 걸 부기장은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왜 그는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을까. 부기장은 왜 말하지 못했을까.


수직적 조직문화가 초래한 구조적 원인

사고 당시, 부기장은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장의 판단에 직접적인 이견 제시를 하지 못했다. 바로, 수직적인 조직문화 때문이었다. '감히 기장의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그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미 기장과 부기장 간에는 위계로 인한 소통 단절이 뿌리 깊었다는 이야기다. 소위 말하는 꼰대문화 때문이다. (공군 사관학교라는 출신 중심의 조직 문화도 한 몫했다.)


당시 항공사의 문화는 수직적이었다. '기장의 권한은 절대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 수직적 문화는 하급자의 솔직한 의견 표현을 억제하고, 실질적인 공동 의사결정을 막았다. 부기장은 기장의 결정에 순순히 따랐으며, 잘못된 결정에 반박하는 건 꿈도 뭇 꿀 일이었다.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부재

바로 그 하찮은 ‘조직 내 권위 존중’이 ‘안전 경고 무시’로 이어진 것이다. 사고 당시 부기장은 기장의 착각(계기 접근 여부)을 암묵적으로 따랐다. 사고 보고서에서도 “부기장이 충분히 상황을 인식했지만, 기장을 제지하지 않았다”라고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추락 사고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위계 중심 문화에서 ‘말하지 못한 경고’가 직접적 원인인 것이다.




타이탄 호 침몰 사고

최근의 사례를 보자.

•사건: 2023년 6월, 오션게이트(OceanGate)의 유인 잠수정 타이탄이 타이타닉 잔해 탐사 중 실종, 이후 압력 손상으로 내부 승객 전원 사망 추정

•탑승자: CEO 스톡턴 러쉬 포함 5명 전원 사망

•문제 핵심: 강압적 조직체계, 실무자 경고 무시


https://www.popsci.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77


CEO 중심의 일방적 결정 구조

잠수함 제작사 오션게이트의 CEO '스톡턴 러쉬'는 회사의 엔지니어와 외부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직접 모든 것을 권위적으로 의사결정했다. 기술자들이 탄소섬유로 제작한 선체의 위험성 등을 수차례 지적했지만, 그는 '보수적인 안전 문화가 혁신을 방해한다'며 공식 비판자들을 배제하거나 아예 해고해 버렸다.


오션게이트의 전 직원(예: David Lochridge, 전 안전 담당자)은 선체 결함을 우려하며 상세한 문서로 CEO에게 위험을 보고했지만 CEO인 스톡턴은 그의 의견을 묵살하고 오히려 회사에서 내쫓아버렸다. 충언하는 직원이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꼴을 본 다른 직원들은 모두 입을 굳게 닫았다.


CEO 스톡턴 러쉬는 반복적으로 ‘우린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라는 식의 언론 발언을 했다. 그는 실제로 인증기관의 감시를 회피하며 '기존 규제를 뛰어넘는 혁신'으로 잠수함의 부실을 은폐했다. 안전 절차를 무시하면서도 ‘나는 옳다’는 권위자가 중심인 문화가 재앙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권위자의 판단에 이견을 제기하기 어려운 수직적 구조였다. 실제로 내부에서 합리적인 토론, 반론의 문화가 부재했다는 정황이 다수 발견되었다. 앞의 항공 사고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진 위계 중심의 문화에서 '말하지 못한 경고'가 사고의 씨앗이 된 것이다.


타이탄 호 침몰은 엄밀히 말하면 기술 실패라기보다 권위 중심, 위험 미화, 소통 부재라는 조직문화의 실패였다. 대한항공 괌 사고와 마찬가지로, '고압적 상하관계',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위에서 결정되면 끝나는 구조', '까라면 까야하는 문화'가 비극의 본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전부다.

조직문화 개선 없이, 단순한 기능적 보완이나 강력한 제재만으로는 조직의 안전과 성장을 확보하기 어렵다. 직원들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충성심을 얻기는 더더욱 힘들다.


두 사건 모두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가'가 아닌, '왜 말할 수 없었는가'를 묻게 만든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안전, 수평적 의사소통, 그리고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다.

진짜 안전과 성장은 시스템이 아니라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다시 묻겠다.

당신은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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