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광팔이의 해외출장, 그 사람 또 출장 간대?

보고할 건 없고, 보고 올 나라만 많다

by 이서


회사 내 광팔이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 예전에 관련 주제의 글을 쓴 적도 있지. ’광팔이‘의 정의가 궁금하신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https://brunch.co.kr/@dontgiveup/108


광팔이들의 동태를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나는, 그들의 해외출장을 지켜보았다. 역시 흥미로웠다. 그들은 어떻게든 건수를 만들어 해외 출장을 나갔다. 동남아는 노골적으로 피했으며 유럽이나 미국을 광적으로 선호했다.




어떻게 진행되냐면.


우선, 해외 출장은 국내 광팔이와 해외 광팔이 양쪽에서 합이 맞아야 된다.


해외 지사에 근무하는 광팔이는, 국내 본사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본사의 광팔이 김 부장에게 연락한다. “아이고, 김 부장님~ 이제 한번 유럽 오실 때 안 됐나요? “라고 운을 띄운다.


그럼 본사에 근무하는 광팔이 김 부장은 그 요청 메일을 근거로 “아이고, 이거 유럽에서 한 번 넘어와서 찐하게 회의 하자는데요?” 라고 윗선에 헛소리를 띄운다. “저는 바빠서 가기 싫은데~~~~ 허 참 이거~~” 라고 너스레를 떠는 건 기본.(하나도 안 바쁨)


짜고 치는 고스톱. 일종의 약속대련이다. 아니면, 자전거래라고 봐도 되겠지. 해외 광팔이와 국내 광팔이의 환상의 듀엣.

대한민국 대표 듀엣 ‘녹색지대’


원격 회의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을, 굳이 외국에 나가 얼굴을 직접 봐야겠다는 공짜 해외여행의 욕망. 그게 핵심이다.


파리는 여기가 맛집이라고 하더라, 5시에 땡치고 퇴근해서 패키지 투어 돌면 된다더라, 캐리어에 컵라면은 이렇게 가져가면 좋더라, ㅇㅇ는 면세점에서 꼭 사 와야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만 출장 가기 전 몇 주 동안 광팔이들 사이에 주요 주제가 된다.


지켜보는 동료들은 한숨을 쉰다.

"또 해외 간대요, 일은 그대로인데"

"누가 또 출장 가? 아, 그분…"

"ㅇㅇ과장 여권에는 도장 넘쳐나겠네“




대망의 유럽 출장 첫날, 국내 광팔이들과 해외 광팔이들이 드디어 파리에서 만난다. 인사를 나눈 뒤, 파리 유명한 한국 식당으로 이동, 삼겹살도 굽고 소주도 마신다. 거하게 저녁 회식한다.


삼겹살 파티는 유럽 지사 광팔이의 보고서에 '한국 출장자 접대 및 의전' 이라고 기록된다. 뭔가 한 척 할 수 있는 거다. 아휴 다행이다. 국내에 보고할 내용 하나도 없었는데.


해외에서 먹는 달콤한 소주의 맛


다음날.

숙취와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회의.

회의 내용은 주로 PPT 설명, 질의응답 류가 대부분이다. 광팔이들은 그럴듯한 PPT를 들고 다닌다. 현실화할 수 없는 제안들이 대부분인 내용이다. 임원들이 보면 혹할만한 ‘글로벌’, ‘AI’ 같은 단어들로 가득 채워놨다. 그 광팔이 자료를 재탕삼탕 사용한다. 회의 내용은 ‘잘해봅시다’ , ‘화이팅!’ 수준이다. 그 정도는 원격 화상회의로 다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 질문 말라. 광팔이들의 해외 출장은 본래 그런 법.


결국 회의 마무리에는 '고생 많으십니다ㅎㅎ' , '앞으로 잘 협의하시죠' 아니면, '추후에 더 이야기 나눠보시죠' 류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결과가 나온다.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광팔이들이 있다.

그렇게 바쁘고 긴급하며 시급한 일이라 해외에 출장 간다면서, 가족들을 출장기간 끝 무렵에 출장지로 불러들여 본인은 가족들과 더 놀다가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물론 개인 연차 사용이다.) "기왕 나간 김에 내가 개인연차로 좀 더 놀다 온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실제로 한 말)


맙소사. 더 놀다 온다구요? 한국에서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동료들은 그 소식을 듣고 그저 웃을 수밖에. 믿기지 않는다고? 하하하.




광팔이 해외 출장의 당위성을 확인하고 싶다면 간단하다. 출장 결과 보고서를 세세히 보라. 구체적이고 상세한 협의 내용이 있는지, To-Do가 명확한지, 앞으로의 일정이 구체적인지, 기존 협의 내용과 다를 바 없는지, PPT는 재탕했는지, 혹시 원격으로 협의해도 되는 내용이었는지 등을 확인하면 된다. 보고서에 모든 게 드러난다.


아니다. 그냥 확인 마시라. 우리는 좋은 것만 봐야 합니다. 험한 건 피합시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을 묵묵히 합시다. 그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개인 성장에도 도움이 될 테니.


오늘도 광팔이들은 바쁘다.

보고 올 나라가 이렇게 많은데, 또 어디로 출장 가볼까나? 룰루랄라.


직장인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이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구독자 258
매거진의 이전글퇴화가 먼저? 퇴직이 먼저? 일생일퇴(一生一退)의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