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연극을 보러 왔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1998년 개봉했던 동명의 영화를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이 근처는 저녁 먹기가 애매하다. 예술의 전당 바깥으로 나가자니 귀찮고, 극장 시설에는 식당이 부족하다. 파리크라상은 언제나 만원이고.(거의 시장바닥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올 때마다 저녁을 대충 때우고 만다.
공연 시작 전.
무대는 꽉 채워져 있다.
많은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기대가 된다.
오늘은 만석은 아니었다.
공연은 인터미션 포함 3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흥미롭게 관람했다.
내용은 영화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연극으로 표현하니 또 색달랐다. 같은 컨텐츠를 다양한 형식으로 접하는 것도 의미가 있구나.
남자 주인공과, 조연들의 연기도 물론 일품이었다.
그중 남자 주인공 셰익스피어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이 작품 속에서 창작의 고통에서 몸부림친다. 먹고살기 위해 무엇이든 글을 써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블로그 수준이긴 하지만,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감정이입이 되었다.(절대 내가 셰익스피어 수준이라는 게 아니다ㅋㅋ) 쉬지 않고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써서 발행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귀찮고 피곤해도, 한 줄이라도 매일매일 써야 일주일에 고작 한편이라도 발행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라는 생각도 든다. 근데, 그래도 해야 한다. 작가가 별 건가? 무언가 쓰면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 글이 좋아야 꼭 작가라고 불리는 건 아니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냥 하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한 줄이라도 쓰면, 적어도 매주 한 편씩은 발행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 셰익스피어를 연기한 '손우현'의 연기는 단연 발군이었다. 연극, 영화, 드라마, 노래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는 배우인 듯한데, 나는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뛰어난 외모와 그에 뒤처지지 않는 환상적인 연기력으로 사랑에 빠진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오사훈 단장역할의 송영규 배우가 등장해서 나는 아주아주 좋았다. 이건 온전히 팬의 입장. 물론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가 나올 때마다 박장대소했다.
하지만 이 작품, 아쉬운 면도 많았다.
캐스팅.
그 유명한 '옥장판 사건'이 일어났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결국 당사자의 사과로 마무리는 되었지만, 공연계의 근본적인 캐스팅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듯하다.
이 작품을 보고, 그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 원작에서 여주인공 바이올라 역할은 무려 기네스 펠트로가 연기했다.(그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보는 즉시 첫눈에 사랑에 빠질 만큼 매력적이며, 이미 런던에 소문이 자자한 미녀라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이 설정이 연극 캐스팅에도 어느 정도 반영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물론 외모가 전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원작의 설정을 파괴하는 캐스팅이 굳이 필요했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최근 디즈니의 인어공주, 백설공주 등의 캐스팅이 욕을 먹고 흥행에 참패한 이유를 떠올려보자.
연기는 물론이다. 이 정도 규모의 대작, 게다가 이미 흥행으로 입지가 탄탄한 작품의 캐스팅에 연기력이 고려되지 않았다면 그건 좀 안타까운 일이다. 이건 현대극이 아니라 16세기 영국의 이야기 아닌가. 시대극은 대사의 톤부터 다르다. 한 층 더 깊고 세밀한 연기가 필요하다.
단순히 '인지도'만 고려한 캐스팅은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낮은 완성도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며, 그런 연극은 결국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티켓팅이 매출에 직결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연기력이 뛰어난 무명의 배우를 캐스팅해 봤자, 표가 팔리지 않으면 말짱 꽝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니. 망하면 소용없는 일 아닌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슬픈 상황인 것 같다.
나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해결책을 단박에 제시할 순 없겠지만.
오롯이 공연을 즐기고 싶은 관객의 입장에서 아쉬운 건 사실이다.
부디 훌륭한 연기력의 무명 배우들이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오늘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