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폰스 무하'전을 보다

by 이서


나는 마크 제이콥스를 좋아해서,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본다. 루이비통 시절 그의 팀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무언가 창작한다는 쾌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위해 보고 또 본다. 잊을만하면 본다. 20년이나 지난 다큐지만 지금도 충분히 가치 있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마크 제이콥스


그 다큐멘터리에서 마크 제이콥스는, 영감을 얻고 감각을 놓지 않기 위해 꾸준히 전시회를 찾아다닌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잠도 못 잘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전시회 관람을 잊지 않는다. 나도 동의한다. 어떤 영역에서 일하던, 전시회와 공연은 중요하다. 인문학적 소양은 분야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이런 스타일의 그림 본 적 있지 않은가.

매혹적인 표정의 여인이 꽃과 형이상학적 배경에 둘러싸인, 이런 느낌 말이다.


소위, 무하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이 그림의 창시자가 바로, '알폰스 무하'다.

오늘은 알폰스 무하전에 다녀왔다.


그는 무명의 작가였다.

1895년. 알폰스 무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신작 '지드몬다'의 포스터 제작 주문을 받았던 인쇄소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 그 인쇄소의 간판급 화가가 연휴로 장기간 휴가를 떠나 포스터를 제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무명의 작가 '알폰소 무하'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2주 만에 포스터를 제작해 납품에 성공했다.

이 포스터의 성공으로 일약 인기작가가 되어 승승장구한다.

인생이란 이토록 알 수 없는 것.


전설의 시작, '지드몬다' 포스터


전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의 작품의 대표적 특징인 여성의 매혹적인 표정들.

잠시 감상해 보자.


그는 여러 상업용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글자를 쓰기 위한 기준선과 밑그림들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실제로 전시를 관람하면 이런 면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재미있다.


그는 조국이었던 슬로바키아의 독립에도 기여하기도 했다. 부와 명예를 뒤로하고 조국으로 돌아가 헌신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멋지다.


아, 그리고 그는 프리메이슨의 단원이기도 했다. 흥미롭다. 비밀결사대와 같은 미스터리한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반가워 한참을 읽었다.

무하와 프리메이슨


그가 프리메이슨의 일원이었다는 것은 그의 책 ‘오트체나쉬’를 보면 알 수 있다. ‘오트체나쉬’는 체코어로 ‘주기도문’을 의미하며, 알폰스 무하가 1899년 말 파리에서 출판한 삽화 서적 ‘르 파테’의 체코어판이다.


‘오트체나쉬’에는 프리메이슨의 상징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책의 표지와 삽화에는 삼각형, 별, 눈 모티프 등의 도상이 등장하며, 이는 당시 신비주의와 결합된 프리메이슨적 사상을 반영한다.


대표적인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1달러 속 피라미드와 눈


’오트체나쉬‘에 들어간 무하의 그림들. 이게 ‘주기도문’의 삽화에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좀 묘하다.


재미있다.

신나게 잘 봤다.

전시나 공연을 볼 때마다, ’나는 아는 게 참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정말 넓다. 이렇게 오늘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전시를 관람하고 밖으로 나왔다.

덥다 더워.

과학자들 말로는 앞으로는 더 더워질 것이고, 지금을 가장 시원한 여름으로 기억하라던데. 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더워질는지. 인류는 견뎌낼 수 있을지. 호모 사피엔스에게 남은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밥을 먹어야지.

이렇게 더운 날은 뜨거운 국밥이 제격.

근처에 온 김에 오랜만에 수하동을 찾았다.


가격이 점점 오른다.

이러다 조만간 2만 원 갈 듯.

맛은 여전했다.


덥다.

얼른 들어가서 쉬어야지.


오늘도 잘 보고 잘 먹었습니다.



이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구독자 237
매거진의 이전글'셰익스피어 인 러브'(연극)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