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강선우 사태를 인상 깊게 지켜봤다.
여권의 태도와 소위 '우리 편'이라는 정치 고관여층 대중들의 반응도 흥미로웠다.(국민의 힘 반응 따위는 관심 없다. 그들은 대체 언제 해체되는 건가)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정치와 민주주의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2025년 6월 말,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이번 사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청문회를 앞두고 언론 보도와 제보를 통해 보좌진에게 사적인 업무를 지시했다는 갑질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한 강 의원의 거짓 해명 논란이 더해지면서 국민적 관심이 급속히 고조됐다. 가히 신드롬급이었다.
변기 수리 요청, 이삿짐 도움, 쓰레기 및 택배 상자 처리 등을 강의원이 보좌진에게 시켰다는 정황이 문자 메시지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청문회와 언론 인터뷰에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지시는 없었다"라고 해명했으나, SBS 등 언론이 공개한 메시지 내용과 상충되면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야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일었다. 결국 강 의원은 7월 23일 자진 사퇴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① 보좌진의 역할과 업무 범위: 국민 세금으로 고용된 공적 인력이 사적 업무에 동원된 것이 정당한가?
② 지시의 성격: 실제로 보좌진이 자발적으로 한 것인가, 의원의 위계를 의식해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인가?
③ 해명의 진실성: 처음에는 부인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후 문자 메시지 증거가 나옴으로써 ‘거짓말’ 논란이 발생했다.
팩트는 무엇인가? 먼저 변기 수리를 지시했냐는 질문에 대해 강의원은 "살펴봐달라고만 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정황은 보좌진이 수리업체 연결까지 담당하며 변기 수리를 해결했다.
일부에서는 “왜 그걸 그냥 했냐?”, “거절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조직 내 위계와 보좌진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말이다. 상사가 '살펴봐달라'라고 한 게, 정말 가서 구경하고 오라는 뜻인가? 이 변명엔 실소가 나왔다. 해결하라는 거 아닌가. 직장생활을 해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지시 아닌가.
이삿짐을 옮기는 것에 대해 지시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강의원은 "자발적으로 도와준 것이다"라고 했지만, 보좌진 복수의 증언을 통해 동원의 정황이 드러났다.
내 지난 회사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상사의 집 화장실을 수리하러 가기 싫고, 상사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버리고 싶지도 않으며, 상사의 이삿짐 옮기는 일에 동원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상사가 부르면 어쩔 수 없이 가야겠지.(갑자기 화나네)
일반 직장인이 그럴진대, 특히나 보좌진은 의원의 신뢰 없이는 생존하기 힘들다. 재계약과 평가 모두 상사의 손에 달려 있고, 국회라는 조직 특성상 더욱 폐쇄적이고 불안정하다. “살펴봐달라”는 말은 직설적인 명령이 아닐 수 있어도, 보좌진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지시’로 느껴진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윤리와 생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고, 그 현실은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슬픈 현실이다.
해명과 증거 간의 불일치는 단순한 착오가 아닌, 고의적 은폐 혹은 책임 회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법적 조치 부분에서는 거짓말까지. 이는 국민이 공직자에게 기대하는 정직성, 책임감, 윤리 의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런 걸 확인하라고 '청문회'를 하는 거다.
이걸 쉴드친다고 어떤 의원은 이런 발언을 했던데.
맙소사. 위 발언에 대해서는 따로 논평하지 않겠다.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일부 '우리 편'에서는 “국민의힘 누구도 예전에 보좌진 시켰잖아? 거기 갑질은 더할 텐데?”, “다들 그러고 살지 않나?”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것은 전형적인 왓어바우티즘(Whataboutism), 또는 투 카쿠 오류(Tu quoque fallacy)다.
왓어바우티즘이란
Whataboutism(왓어바우티즘)은 어떤 행위나 잘못이 지적될 때, 그 문제에 대해 정당하게 답변하지 않고 “그쪽도 그랬잖아”, “다른 사람도 똑같이 했잖아”라고 맞받아치는 방식의 오류다. “그쪽이야말로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용어가 너무 널리 퍼져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2021년 이 용어를 사전에 등재하고, 이를 “다른 사람이 저지른 범죄가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함으로써 잘못에 대한 비난에 대응하는 행위 또는 관행”으로 정의했다.
투 카쿠 오류란
"투 카쿠 오류" (Tu quoque fallacy)는 어떤 사람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비판할 때, 그 비판자의 행동이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아 비판의 논리적 근거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논리적 오류다. 쉽게 말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논리이다.
이 논리들은 논점을 흐린다. 남의 잘못이 내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강선우라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공직자 윤리의 문제이고, 그 책임은 행위의 사실 여부에 따라 독립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윤석열을 생각해 보자. 윤석열 정부 초기, 우리는 그를 불신했다. 검찰권 남용, 비판 언론 탄압, 김건희 의혹 감싸기, 내 편 중심의 인사 등에서 권력의 사유화와 비판 회피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선우 사태 역시 유사했다. 권력의 사적인 남용 → 거짓 해명 → 사실 드러나도 인정 않고 버팀 → 책임 회피. 그나마 다행인 건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윤석열을 비판했던 바로 그 기준을 우리 편 사람에게는 눈감으려 한다면, 우리는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편들기의 결과물이 아니라 기준과 원칙의 합의로 유지된다.
최근 논란 중 하나는 매불쇼 등 유튜브 채널에서 강 의원을 비판(비판도 아니었다.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하거나 풍자한 콘텐츠를 두고 우르르 몰려가 “린치다”, “공격이다”, "내부 총질이다"라고 몰아붙이는 흐름이다. 이 부분이 꽤 흥미롭다. 구독취소를 한다느니 가만두지 않겠다느니 난리다. 매불쇼가 지난 윤석열 내란정국에서 어떤 희생과 노력을 했는지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다. 어제까지는 정의를 외치다 오늘은 감싸기에 급급하고, 니 편 내 편 가르며 이랬다 저랬다 하는 태도 속에 진심은 사라지고 남는 건 가벼움뿐이다. 그게 참 우습다.
비판과 풍자는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구성하는 요소다. 매불쇼는 지난 윤석열 정권에서도 최선을 다해 비판했다. 그 쇼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건 없다. 비판에 불쾌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린치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허용하려는 태도야말로 반민주적이다. 린치와 비판은 구분돼야 하며, 불쾌함은 제어해도 표현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후보 한 명의 낙마로 끝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기준과 원칙을 갖고 정치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자고 우리는 지난겨울 차가운 길바닥에 함께 모여 목소리를 냈고, 결국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새 정부를 세운 것 아닌가? 나만 그런 건가?
팩트 중심으로 판단하자. 감정, 당파성, 소문보다 증거가 먼저다.
우리 편 감싸기에서 벗어나자. 진영보다 원칙이 앞서야 한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존중하자.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우리의 권리이다.
비판과 응원의 균형을 잡자. 정당한 비판은 용기며, 정당한 응원은 지혜다.
강선우 사태는 공직자 개인의 윤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정치인을 평가하고, 어떤 기준으로 정치를 응원하는가를 묻는 사건이었다. 니 편 내 편은 여기서 상관없다. 왜 잘못을 명확히 따지지 않고 '의리'와 '동지의식'만을 부르짖는가? 강선우 뿐만아니라 다른 그 어떤 의원이 그런 짓을 했더라도 우리는 똑같이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지난 윤석열 정권에서 우리는 절절히 목도하지 않았는가.
또 다른 독재 정권을 불러올 수는 없다.
정치가 시민을 기만하지 않게 하려면, 시민이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편에 서지 말고, 원칙에 서자.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