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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23. 2016

계단 오르기

 요새 계단을 오른다. 뭐 특이한건 아니고, 그냥 운동삼아 오른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에 5층이었던 사무실이 최근 26층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26층. 운동삼아 오르기에는 좀 높다. 첫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테스트 겸 1층부터 26층까지 올라보기로 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첫 발걸음을 떼었다. 26층까지 앞발끝만 바라보고 열심히 올라갔다. 6분정도 걸린것 같다. 숨이 턱끝까지 차고 땀이 뻘뻘 났다. 자리에 앉아서 선풍기를 틀었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아직 여름이 오기도 전인데, 땀이 이렇게 나버리면 진짜 여름에 26층을 올랐다간, 어디가서 샤워라도 해야할 판이 될것이다.

 둘째날 방법을 바꿔봤다. 출근하려고 줄을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계단쪽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겉옷을 벗고. 소매를 걷어올렸다. 심호흡을 크게하고 천천히 한 걸음씩 올라갔다. 아주 느리게.(출근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다.) 터벅터벅 걷는다고 생각하고 올랐다. 흠. 26층에 도착. 땀은 아주 조금. 숨도 그렇게 차오르진 않았다. 괜찮은데?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아주 조금 부족해.

 셋째날, 출근하면서 이어폰을 준비했다. 1% 부족한 그 무언가를 채우기위해 음악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26층까지 오르는 길은 비록 10분 정도지만 재미가 없었다. 이것저것 핸드폰에 음악을 넣고 출근을 했다. 이번에는 이어폰을 꽂은채로, 윗옷을 벗고, 소매를 걷고, 계단으로 향하는 철문을 열었다. 천천히 음악을 들으면서 올라갔다. 앞발끝만 보고 올라가다가 이제 주변도 둘러본다. 아 이 층에는 문이 잠겨있구나. 이 층은 형광등이 나갔네. 안보이던 것들도 조금 보인다.

 벌써 계단을 오른지 몇달이 되었다. 요새는 날씨가 습하고 더워서 1층부터 오르기엔 부담이 있다.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엘리베이터로 중간층까지 오른 후 계단으로 나머지층을 올라간다. 나이가 들 수록 땀냄새 따위는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단을, 아무도 없는 계단을(비상계단이라 사람이 없다.) 혼자 터벅터벅 오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한층만 더 오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단참에 서서 씨익 웃으시며

 '이선생 요새 힘들지? 가장되기가 쉬운게 아냐 이 사람아." 라고 한마디 해 주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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