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다

by 이서


감사하게도 아내 덕분에 요새 뮤지컬을 좀 보고 있다. 그동안은 주로 영화를 많이 봤는데, 뮤지컬을 접하다 보니 영화와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뮤지컬은 노래와 연기, 그리고 춤이 혼합된 종합 예술이라는 점이다. 연극+오페라+콘서트+무용이 합쳐진, 말 그대로 종합 엔터테인먼트다. 극장 예술의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될까. 다양한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달하기에 관람하는 쾌감이 다른 장르에 비해 몇 배 더 짜릿하다. 화려한 무대 장치도 한 몫한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연출했지?'라고 감탄을 자아낼 만한 씬들을 만날 때마다, 내 입에선 절로 탄성이 나온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눈과 귀가 느끼는 모든 것이 진짜라는 것이다. 배우는 직접 내 눈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한다. 오케스트라는 직접 현장에서 연주하며, 무대는 실시간으로 바뀌고 움직인다. 유튜브, 영화 등 모니터로 보는 것이 익숙해진 이 시대에, 뮤지컬에서는 모든 것이 진짜다. 그래서 과거에도 뮤지컬은 비싼 예술이었지만,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듯하다. 진짜가 귀해지는 요즘이니 말이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기 위해 샤롯데시어터를 찾았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제목처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이미 수십 년간 공연 중이다.

화려한 탭댄스로 유명한 작품이다.


오늘의 캐스팅


대극장답게 넓고 높다.


내용은 단순하다.

대형 뮤지컬을 앞두고 부상을 당한 주인공을 대신해 무명의 신인이 기회를 얻게 되고, 스타로 떠오른다는 이야기. 오디션부터 시작하는 신인의 고군분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흔한 신데렐라 서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쓸데없는 멜로라인이 없어서 차별점이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212091.html


쇼쇼쇼!

끝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퍼포먼스. 쇼란 무엇인가의 정석이 궁금하다면,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면 된다.

화려한 무대 장식과 음악, 댄스 연출이 보는 내내 감각을 극도로 자극했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군무의 연속이다.


탭댄스가 이토록 매력적인 퍼포먼스였던가.

구두굽이 바닥을 때리며 무대를 울린다. 수십 명이 함께 추는 탭댄스 군무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이게 바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인가. 라는 경외감이 들었다. 몇 년 전 가족과 뉴욕에 여행을 가서 본 '라이온 킹'과는 또 다른 감동이다. (갑자기 그때 아들이 공연 내내 쿨쿨 잠만 잤던 기억이 나네. 그게 얼마짜리였는데 아들아... ㅠㅠ)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212091.html


매기 존스 역의 '백주희' 배우가 인상 깊었다. 나는 이 분이 연기하는 거의 모든 장면을 낄낄 웃으며 봤다. 뮤지컬에 맞지 않는 대사톤인 것 같은데, 또 찰떡이다. 애드립인 것 같은데 또 적절하다. 어찌나 개그가 내 취향이던지. 그 완급조절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분 때문에라도 한 번 더 관람할 의사가 있을 정도다. 최근엔 영화 '노이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하셨던데, 앞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가장 놀랐던 건 바로 주인공 페기 소여 역의 '최유정' 배우였다.

인터미션 전까지 나는 최유정 배우의 연기를 보며, '참 잘한다' 저런 배우가 있었네? 대단한 뮤지컬 배우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터미션 때 아내가 최유정 배우가 아이돌 출신이라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정말 훌륭했다. 단순히 노래와 연기가 아니라 고난도의 탭댄스까지 소화해 내야 하는 배역을 완벽히 연기했다. 그간 낙하산 아이돌 출신의 엉망 배역들을 보다가, 최유정 배우의 연기를 보니 눈과 귀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에 대한 나의 편견이 심했던 것 같다. 반성합니다. 하지만 낙하산은 여전히 반대합니다.)


직접 신청해서 오디션을 보고, 합격, 주인공으로 낙점되었다던데. 도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그 누구든 응원하고 존경한다. 최유정 배우, 큰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응원하겠습니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312/0000722692



탭댄스라는 처음 경험했던 퍼포먼스의 기억이 강렬히 남을 것 같다. 무대 예술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런 좋은 공연을 보면 일상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이고, 삶을 조금 더 빛나게 만들어 준다.


더군다나 나처럼 IT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공연의 관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감정을 자극하고 무의식을 흔드는 경험을 통해 평소 논리와 경직된 사고 패턴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정서적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니. 평소와 다른 이런 이질적 경험이 창의적 발상을 돕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세상 모든 직장인들에게 공연 관람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구나.

아, 뭐, 글이 의도치 않게 거창해졌다. 너무 그럴듯하게 포장하려고 할 필요 없다. 이런저런 요란한 얘기 다 빼놓고, 그냥 우리도 좀 재미있는 것 보고 즐기며 삽시다.


The Show Must Go On.

쇼는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우리 인생처럼.


오늘도 잘 봤습니다.



이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구독자 237
매거진의 이전글Daum이 망했던 유료우표제, 그길을 브런치가 따라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