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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현장의 고독과 시스템 뒤에 숨은 비극의 민낯

by 이서


며칠 전,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가 있었다. 거대 시스템이 멈췄을 때 국민들이 겪은 불편함이 물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실무진들이 겪을 끔찍한 압박감이 더 걱정이었다. 누군가는 며칠 밤을 새워가며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늘, 이 기사를 접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01/0015665313?ntype=RANKING


숨이 턱 막혔다.


작업 실수든, 화재든, 단순 장애든, 결국 책임의 무게는 가장 약한 고리, 바로 실무 담당자에게로 쏠린다. ‘마녀사냥’과 다름없다. 나 또한 IT 서비스 운영 담당자로 일하고 있기에, 이 소식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동병상련의 고통이었다.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결국 이렇게 끝나버린 것만 같아서 가슴이 미어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이걸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가. 이면에는 어떤 실체가 숨겨져 있는가.


이런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기술적 결함만 논한다. 대응이 엉망이고, 보고 체계가 어떻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IT 시스템의 본질적인 취약점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 언제나, 슬픈 이야기는 '의사 결정권자'(임원이나 책임자등 리더)의 동물 같은 욕망에서 시작된다.


아마도, 현장의 실무자들은 목이 터져라 필요한 현실적인 요구사항과 고충을 이야기해 왔을 거다. 작업 환경의 열악함, 기술 부채 해결, 서버나 네트워크 인프라 개선, 시스템 구조 및 설계 고도화, 부하에 대비한 호출 방식 개선, 재해복구(DR) 센터의 정비 및 고도화, 그리고 무엇보다 운영 인력 충원 등을 미리미리 준비해서 조금씩이라도 개선하자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늘 깡그리 무시된다. 의사결정권자들은 오직 '본인의 자리보전'을 위한 광팔이(보여주기식) 과제에 집중하거나, 당장 눈앞의 예산 삭감 등에만 주력한다.


“서버실 수리? 인프라? 호출 구조? 그런 거 개선해 봤자 눈에 띄지도 않고, 내 실적에 도움도 안 되는데 굳이? 지금까지 잘 돌아갔는데 뭐가 문제야?! 가서 미국에 전개할 새로운 앱이나 구상해 와! 사장님한테 보고하게!”라는 단세포적 태도는, 결국 터질 때까지 시스템의 시한폭탄을 방치한다.




모든 문제는 결국 폐급 의사결정권자를 포함한 임원과 책임자급 리더들의 구조적인 무능과 부패에서 비롯된다.


임원들은 자리를 보전하려고 각종 그럴듯한 ’광팔이 프로젝트‘에 집착하고 실무자들을 압박한다. 그 아래 무능력한 리더들은 임원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딸랑딸랑 ‘네네 물론입죠’라고 파충류처럼 반응하며 말단 실무자들을 찍어 누른다.


그래서, 결국 문제가 터지면, 욕을 먹고, 감당하고, 징계당하는 건 언제나 최전선의 실무자다. 비극적인 일이다. 실무자들은 그렇게 고립된다.


이러한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IT 서비스 담당 고위직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광팔이' 프로젝트들은 지금도 공기업, 사기업 가리지 않고 저주의 굿판처럼 펼쳐지고 있다.


근본적인 안정화보다 화려한 신기술 도입, 언론에 내세울 수 있는 반짝 성과 위주의 과제만이 환영받는다. 현장은 곪아 터지는데, 수뇌부는 눈먼 돈을 쓰며 자신들의 치적을 쌓기에 바쁘다.


이런 구조가 존재하는 한, 국가 전산망 장애 사태와 같은 비극은 계속 반복될 뿐이다. 사기업도 똑같다.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밤낮없이 고군분투하는 실무자들의 헌신은 단 한 번의 사고로 무시되어 버린다. 담당 실무자는 ‘마녀사냥’을 당하고 결국 모든 것을 잃는 '희생양'이 된다.




우리가 이번 사태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IT 시스템 운영을 '자리보전용 홍보수단'이 아닌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고 기초부터 투자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다.


‘ㅇㅇ 글로벌 앱‘ 같은 광팔이 앱이나 서비스를 만들거나, ’ㅇㅇ 통합 시스템 구축‘처럼 겉으로만 화려한 프로젝트에 목숨 거는 임원, 책임자들은 사라져야 한다.


실무자의 피와 땀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시스템에 더 이상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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