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봉반점, 중화비빔밥 유랑의 끝을 보다

by 이서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종군기자로 꼽히는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말이다.


그동안 나는 중화비빔밥이란 무엇이며, 대체 어떤 중화비빔밥이 맛있는 것인가에 대해 탐구했다.

내 지난 탐구의 글들은 다음과 같다.

https://brunch.co.kr/@dontgiveup/410

https://brunch.co.kr/@dontgiveup/513


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왜 중화비빔밥을 먹어도 먹어도 해소되지 않는 허기가 느껴졌던 걸까. 로버트 카파의 문장을 곱씹으니 비로소 이해가 된다. 내가 아직 중화비빔밥이라는 대상에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렇다면 더 가까이 다가가봐야지. 이렇게까지 가까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중화비빔밥의 성지, 대구로 가자.




도착했다. 대구 수봉반점.

2016년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등장하며 전국에 중화비빔밥 열풍을 불러일으킨, 사실상 이 장르의 원조와도 같은 곳이다.


네이버예약이 된다. 예약하고 가야지, 안 그럼 한두 시간 넘게 대기가 필요하다. 나는 네이버 예약을 하고 갔다. 가게 앞에 가서 예약시간과 이름을 이야기하면 대기표를 준다. 이 철저한 예약/대기 시스템이 맛을 방증한다. 기대가 크다.


입장했다.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공기가 느껴진다. 분주하지만 어쩐지 질서 있는 활기가 있다.


저 안쪽이 주방이다.


1인석이다. 오롯이 맛에만 집중할 수 있겠구만.


사장님이 매우 친절하시다. 친절한 노포는 언제나 반갑다. 벽에 걸린 3개월치 달력이 이 집의 인기를 나타낸다.(스케줄이 빡빡하게 관리된다는 뜻?)


국물먼저 나왔다.


한 숟가락 먹었다. 흔한 짬뽕 국물이 아니다. 전분기 없이 맑고 개운한 채수 베이스다. 썰어 넣은 파가 시원함을 더하고, 진짜 오징어가 주는 감칠맛이 돈다. '원대구탕'의 지리처럼 깊고 시원하다. 이 국물만으로도 재방문하고 싶을 정도다. (갑자기 짬뽕이 어떨지 매우 궁금해졌다.)


나왔다. 오늘의 주인공 중화비빔밥.


강렬한 직화 제육 향이 느껴진다. 불향이 압도적이다. 계란프라이는 대량 주문받은 제품이 아니라, 직접 구워 주신 듯하다.


비볐다. 붉은 양념이 밥알 하나하나 코팅한다.


그동안 다녔던 몇몇 가게는 양념을 충분히 올려주지 않아서 항상 부족했는데, 여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양념은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다. 아삭한 야채와 고기가 밥보다 많아 보일 정도로 풍성하다.


완벽한 단맛과 짠맛의 조화다. 분명 제육볶음의 맛이지만, 질감과 풍미는 단순한 덮밥의 경계를 넘어선다. '아, 이게 진짜 중화비빔밥이었구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단무지도 올려서 먹는다.


분명 야채를 오래 볶았을텐데 식감이 잘 살아있다. 아삭아삭 씹는 맛이 좋다. 게다가 고기는 큼직해서 쫄깃쫄깃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


성인 남자가 먹기에 양은 충분하다. 인심이 넉넉하다.


양파도 춘장에 찍어서 먹는다. 그럼 또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밥알이 마르지 않는다. 끝까지 촉촉함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기술인 것 같다.


다 먹었다.

완료


무언가 궁금하다면, 역시 끝까지 파헤쳐 봐야 답이 나온다. 그것이 음식이든, 인생이든. 대충 겉만 훑고 덮어버리면 영원히 미련만 남을 뿐이다.


됐다. 이것으로 나의 중화비빔밥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지금까지 먹었던 것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은 중화비빔밥이라 부르기에 애매했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진짜를 찾아 헤맨 이유를 오늘 대구에서 확인했다.


비로소 '중화비빔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 속이 후련하다. 앞으로 중화비빔밥이 그리워지면, 별수 없지. 다시 대구로 오는 수밖에.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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