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비빔밥을 먹고 싶어서 지난번 보배반점에서 시도했는데. 그다지 인상적인 느낌은 받지 못했다.
당시 썼던 글(https://brunch.co.kr/@dontgiveup/410)
더욱 궁금해졌다.
과연 중화비빔밥이란 무엇이며, 어떤 맛이 본질인 것인가.
중화비빔밥은 딱히 특정 지방의 전통 음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970~80년대 한국 전역의 중국집 주방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창작 요리로 보인다. 당시 중국집에서는 짜장면, 짬뽕, 볶음밥이 주력이었지만 남은 채소와 고기를 활용해 새로운 메뉴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인의 ‘비벼 먹는 문화’와 중식 볶음 양념이 결합해 지금의 중화비빔밥이 탄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탄생이 그러하다 보니, 표준화된 레시피는 존재하지 않을 수밖에.
한국 전통 비빔밥이 고추장과 나물 중심이라면, 중화비빔밥은 간장, 굴소스, 고추기름 등 중화풍 양념과 볶음 재료를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한식과 중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맛을 낸다. 바로 그 부분에 중화비빔밥만의 묘한 매력이 있다.
전라도 군산이나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중화요리의 뿌리가 깊은 지역에서 만들어져 퍼져 나간 것으로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대구가 중화비빔밥의 본류로 여겨진다.(왜지?) 현재 전국 3대 중화비빔밥으로 지목되는 가게는 모두 대구에 있다.
이거 참. 중화비빔밥을 먹자고, 갑자기 대구까지 갈 순 없는 노릇.
서울에 중화비빔밥을 파는 몇몇 가게가 있는데, 그중에서 오리지널 대구의 중국음식을 표방하는 중식당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상호가 무려 ‘달구벌반점’('달구벌'은 신라 시대 지명으로, 현재의 대구 지역을 가리킨다.) 중화비빔밥의 본류가 대구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도착.
달구벌반점.
2층이다.
입장했다.
돈가스 집 같기도 하고, 떡볶이 집에 가깝나. 아무튼, 묘한 분위기다.
1인석도 마련되어 있다.
바로 제공되는 기본 반찬. 단무지와 양파.
나왔다. 중화비빔밥.
늘 그렇듯, 올라간 계란 후라이부터 봤다.
음. 근데 올라가 있는 계란 후라이, 이거 직접 부친게 아니라 대량으로 납품받은 냉동 제품 같다.
계란 후라이를 직접 만들어 올리지 않는다는 건,
결국 방향성이 패스트푸드라는 건데.
달고 짠, 오징어볶음 혹은 제육볶음 덮밥에 가깝다.
비벼봤다. 비빔밥이니 비비는 게 당연.
(지난번 보배반점은 비빔밥이라기보다는 덮밥 쪽이었지.)
기대했던 것보다 불향이 덜하다.
당근, 숙주, 도라지 등 야채가 많이 들어있다.
한국식 비빔밥과 중화풍이 어우러졌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오히려 전주비빔밥 스타일이다.
밥이 질다.
그게 좀 아쉽다.
내 기준엔 양념이 부족했다.
밥이 더 많아서, 좀 싱겁게 느껴졌다.
한국식 비빔밥이었다면 비빔장을 조금 더 달라고 요청했을 텐데 말이지.
그래서, 단무지와 양파를 더 먹었다.
완료.
이것이 바로 '중화비빔밥'인 것일까.
아, 나는 여전히 좀 의문이다.
중화비빔밥의 본류를 맛보려면, 역시 대구를 직접 방문해야만 하는가.
방법은 그것뿐일까.
혹시 나는 존재하지 않는 오리지널을 찾아 헤매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 물론, 몇 번은 먹어봤다. 내가 먹은 건 '중화비빔밥'이 맞다. 메뉴판에도 분명히 그렇게 쓰여 있었고, 그릇 안에도 어쨌든 밥과 양념과 무언가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먹어볼 때마다, 묘하게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나는 애초에 있지도 않은 유령같은 정답을 좇고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 오래전에 한 번 농담처럼 붙여놓은 이름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그럴듯한 정통의 이미지로 부풀어 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심이 내 발걸음을 더 멀리 데려가고, 동시에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나는 갈지자로 걷는다. 어쩌면 인생과도 비슷하다. 누구나 '진짜 나'를 찾아 헤맨다. 어디엔가 정답 같은 원형이 있을 것만 같아 발을 옮기지만, 막상 손에 쥐면 늘 조금은 어긋나 있다. 괜찮다. 그 여정과 경험 자체가 인생인 것이다.
괜한 짓을 하는 건가.
더 알아봐야 할지 고민된다.
비빔밥 하나 놓고 별 이야기를 다 하는군.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