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랑루즈!’(뮤지컬)를 보다

by 이서


1889년 파리 몽마르트 언덕, 거대한 붉은 풍차 하나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캬바레 '물랑루즈(Moulin Rouge)'의 탄생이다. (물랑 루즈는 '빨간 풍차'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캬바레'의 의미가 질 낮게 변주됐지만 원래는 프랑스어로 ‘큰 무대를 갖추고 쇼걸이 펼치는 무용을 보면서 술과 식사를 즐기는 유흥업소’를 뜻한다.


당시 '물랑루즈'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유럽의 풍요와 평화가 절정에 달했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좋은 시대)'를 상징했던 그곳 '물랑루즈'. 귀족부터 노동자, 예술가들이 뒤엉켜 샴페인을 마시며 캉캉 춤을 즐기던 욕망과 해방의 공간이었다.


그곳은 단순히 유흥을 즐기는 캬바레를 넘어,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의 산실이자, 계급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보헤미안 문화의 중심지였다. 뮤지컬 '물랑루즈!'는 이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낭만적인 파리의 밤거리와 그 속에서 피어난 운명적 사랑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아내와 함께 한남동 블루스퀘어를 찾았다.


블루스퀘어답게 건물 주변에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 중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다. 분위기가 뜨겁다.


이 작품은 바즈 루어만 감독의 2001년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뮤지컬 영화의 붐을 일으킨 원조였다. ‘라라랜드’의 조상님쯤 되겠군. 영화가 먼저, 뮤지컬이 나중, 인 셈이다.


영화와는 다르게 현장 무대만이 줄 수 있는 생생한 역동성으로 그 감동을 확장시켰다. 특히 일반적인 오케스트라나, 재즈 등의 음악과 다른 넘버들이 이색적이다. 19세기말 시대적 배경 위에 마돈나, 비욘세, 아델, 레이디 가가 등 20세기와 21세기를 아우르는 다양한 팝송을 사용했다.


이런 걸 매시업(Mash-up) 뮤지컬이라고 한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배웠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흥미로운 음악적 시도다. 처음 접하는 뮤지컬 방식에 기대가 크다.


화려한 의상과 세트가 특징이라더니, 블루스퀘어 전체를 마치 '물랑루즈'처럼 꾸며놓으려고 했나 보다. 블루스퀘어에 뮤지컬을 관람하러 몇 번 와봤지만, 이렇게 건물 전체를 화려하게 바꿔놓은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관객으로 하여금 100년 전 파리의 카바레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려는 걸까. 갑자기 이 작품 제작사가 궁금해질 정도로 많은 투자를 한 게 느껴진다.


오늘의 캐스팅.

오늘 객석이 이토록 붐비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홍광호'가 주인공 크리스티앙을 연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압도적인 가창력을 좋아한다. 터져 나오는 성량과 완벽한 테크닉은 여타 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만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생각한다. 가히 독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순전히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이곳에 왔다.


무대는 화려하고, 또 화려하다. 이렇게 화려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압도하는 붉은 조명과 무대 양옆에 자리 잡은 거대한 코끼리와 붉은 풍차 조형물은 순식간에 나를 1899년의 파리로 순간이동 시켜주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의 막이 내렸다.


객석을 나서는 발걸음 뒤로 묘한 허기와 아쉬움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당초 나는 '브로드웨이 42번가' 류의, 눈과 귀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화려한 쇼 뮤지컬을 예상했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무대는 오히려 계급 간의 갈등과 얽히고설킨 사랑을 다루는, 대사 중심의 '치정 멜로'에 가까웠다. 쇼가 주는 원초적 쾌감보다는 드라마의 서사가 비대해지다 보니, 화려함을 기대했던 관객으로서는 다소 담백하다 못해 심심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무엇보다 일부 배우의 가창력은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것과 엄연히 다르다. 불안한 음정으로 고음만 밀어붙이는 아슬아슬한 가창을 지켜보는 내내, 감동보다는 조마조마함이 앞섰다. 나는 여전히 뮤지컬계의 캐스팅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 왜 저 사람은 계속 캐스팅되는 거지? 싶은 유명 배우들이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 번안곡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모든 번안이 완벽할 수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팝 명곡들이 주를 이루는 작품인 만큼, 관객의 뇌리에 깊이 박힌 원곡의 아우라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다. 나는 팝에서 영어 특유의 굴러가는 연음과 라임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가사가 중요한 이유이다.) 이걸 정직한 한국어 음절로 변환시켜 버렸다. 영어로 2음절이던 걸 한국어로 개사하니 5음절이 되고, 그걸 두 음에 강제로 끼워 넣으려니 마치 랩 비슷한 타령처럼 바뀌는ㅠㅠ


그러니 투박하게 들리거나, 팝 본연의 그루브가 희석되는 구간들이 많이 아쉬웠다. 누구나 아는 팝의 하이라이트가 한국어로 터져 나올 때 느껴지는 찰나의 낯설음은, 과거 진주의 번안곡 '난 괜찮아'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미묘한 민망함과 닮아 있었다. 원곡 가사가 가진 미묘한 뉘앙스가 직설적인 한국어로 바뀌며 세련미가 반감되는 순간들은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마치 정화 의식처럼 2001년작 영화 '물랑루즈'를 다시 관람했다.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나서야, 비로소 무대 위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이완 맥그리거의 순수하지만 우수에 찬 예술가 연기, 니콜 키드먼의 눈부신 비주얼과 가창력, 그리고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공작의 찌질한 질투까지. 서사와 연기, 그리고 화려한 쇼가 물 흐르듯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 영화 '물랑루즈'가 명작인 이유는 바로 이 완벽한 균형감 때문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P.S. 그나저나 이 글을 스타벅스에서 쓰고 있는데, 요새 스타벅스에서 '프렌즈'와 콜라보를 진행하나 봅니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프렌즈' 주제가가 흘러나오는 게 꽤 좋네요. 오랜만에 느끼는 '프렌즈' 감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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