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얀 마텔(Yann Martel)이 발표하여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 '파이 이야기(Life of Pi)'.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나다 조난당한 소년 '파이'가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구명보트에서 227일간 표류하는 기묘한 생존기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계' 등을 연출한 이안 감독이 2012년 영화로 실사화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원작이 종교와 이성, 그리고 야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면, 영화는 이를 황홀한 영상미로 구현해 냈다.
그 영화가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이 작품은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다.(춤과 노래는 하나도 없다.) 2019년 첫선을 보인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올리비에 어워드와 토니 어워드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런던과 뉴욕을 거치고, 이번에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이 직접 참여하여 아시아 최초로 한국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GS아트센터를 찾았다.
이미 예전에 영화를 보았던 나는 의아했다. 영화 속 방대한 서사를 무대 위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처럼 보였다. 망망대해의 고립감과 사나운 맹수와의 공존을 라이브 공연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좀 알아보니, 영국에서 초연된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올리비에 어워드와 토니 어워드 등 세계 유수의 시상식을 휩쓸었다고 한다. (나는 수상 자체가 우수함을 증명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을 무한한 상상력의 바다로 어떻게 확장시켜 연출할 것인가? CG가 아닌 아날로그적 감성을 통해 원작이 가진 철학적 무게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오늘의 캐스팅
입장했다.
객석에 들어서자마자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냉정히 말해 GS아트센터의 좌석 배치는 공연 관람에 최적화된 구조라 보기 어렵다. 앞뒤 좌석의 단차가 터무니없이 낮은 탓에, 시야의 절반이 앞사람의 머리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위대한 개츠비' 이후 두 번째 방문이지만 실망감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뼈아픈 건 이 작품의 핵심인 바닥 연출을 전혀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무대 바닥을 활용한 다채로운 시각 효과가 있다고 익히 들었으나, 내 자리에서 바닥은 완벽한 사각지대였다.
극이 끝났다.
이 극의 핵심은 단연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배우들의 역량에 있었다. 주인공 '파이' 역의 박강현 배우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단 한 번의 퇴장 없이 엄청난 대사량과 역동적인 신체 연기를 소화했다. 경이로운 집중력. 연기도 연기지만 그 엄청난 체력에 경의를 표한다. 게다가 순수한 소년의 모습에서 극한의 상황 속 야성을 깨우는 생존자의 눈빛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이 극의 또 다른 주인공인 뱅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었다.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며 극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었다. 세 명의 퍼핏티어(Puppeteer)가 호흡을 맞춰 머리, 몸통, 다리를 조종하며 만들어낸 호랑이의 움직임은 근육의 떨림과 거친 숨소리, 꼬리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재현해 내며, 실제 맹수가 무대 위에 존재하는 듯한 압도감을 선사했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나면 우리는 파이의 마지막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와 나오지 않는 이야기 중,
당신은 어떤 스토리가 더 마음에 듭니까?
이는 단순히 진실 공방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인생의 고통과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팩트(Fact)만이 진실로 추앙받는 시대에, 아니 무엇이 사실인지조차 모호한 이 시대에, '라이프 오브 파이'는 우리에게 믿음과 환상이 가진 치유의 힘을 역설한다. 비록 삶이 흉포한 호랑이와 동거하는 표류기일지라도, 그것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승화시킬 때 우리는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묵직한 철학적 교훈을 선사한다.
극은 종교의 존재 이유와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때로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교적 신념에 기대는 이유. 그것은 결국 우리가 파이의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더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간 사회의 참혹한 민낯을 맨눈으로 견디기 어렵기에, 우리는 기꺼이 '동물이 나오는' 환상에 의지하여 삶을 지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파이의 긴 표류가 우리에게 건네는 삶의 교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신나는 음악과 춤, 유쾌한 웃음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냉정히 말해 이 극은 오락물이라기보다 무용을 접목한 현대 철학, 혹은 전위 예술 퍼포먼스에 가깝기 때문이다. 공연장이 아닌 미술관에 왔다고 생각하자. 서사가 흐르는 미술 전시회를 관람한다는 관조적인 태도로 임할 때, 비로소 이 난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지도.
당신은 현실과 환상, 그중 어떤 이야기를 믿겠습니까?
오늘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