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유튜브나 릴스 같은 숏폼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이제 인간은 더 이상 글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무서운 예측도 나온다. 최근에는 텍스트를 요약해 주거나 대신 읽어주는 음성 서비스까지 등장해 기술의 발전을 실감하고 있다. 실제로, 긴 글을 읽지 못하는 ‘텍스트 공포증’을 겪는 젊은 층이 늘고 있으며, 핵심만 요약해 주는 ‘3줄 요약’ 문화가 지식 습득의 기본이 되었다고 한다. 한탄할 일이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읽는 대신, 기계가 정제해 준 결과물만 받아먹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는 영원할 것이다.
직접 텍스트를 읽는 인간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지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훨씬 우월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이 아니라, 글자를 머릿속에서 이미지와 논리로 바꾸는 '능동적인 사고' 과정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읽는 사람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사유의 깊이가 깊다.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언제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고, 어떤 기술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적 주도권을 갖게 된다. 읽는 사람의 눈을 떠올려보라. 독서하는 사람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최근 AI가 확산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일 자체를 AI에게 완전히 맡기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모든 고민을 AI에게 묻고, 그 판단에 따라 지시를 받는다. 이는 사유의 과정을 생략한 'copy and paste' 삶이다. 실제로 신경과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가 써준 글을 단순히 읽거나 활용할 때 우리 뇌의 활동량은 스스로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할 때보다 현저히 낮아진다고 한다. 깊이 고민하고 토론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시간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뇌가 점차 '게으른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흔히 뇌가 썩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신기술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걱정되는 일이다.
시험 준비를 AI에게 맡기거나 AI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가져야 할 비판적 검토 능력과 주도적인 사고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읽기’다. 독서는 AI 사용으로 인해 낮아진 뇌의 활동성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텍스트를 읽는 동안 우리 뇌는 문맥을 파악하고 정보를 연결하며 끊임없이 추론한다. 짧은 영상은 뇌를 수동적으로 만들지만, 긴 활자는 뇌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지적인 운동장' 역할을 한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의 글이나 유튜브 자막을 읽는 것을 두고 '나도 매일 읽기를 하고 있다'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파편화된 정보로는 문장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결코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글자를 해독하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읽기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접한 정보는 기억 속에서 금방 사라진다. 활자로 된 책을 깊이 있게 독서하는 것만이 인간의 사고력을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오디오북이나 AI 요약 서비스가 편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읽기만큼은 기계에게 맡기지 말자. 직접 눈으로 글자를 좇으며 나만의 언어로 문장을 곱씹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읽는 도중 멈춰 서서 질문을 던지고, 상상해 보고, 텍스트 속에 담긴 타인의 경험에 공감하며 나의 것으로 변환해야 한다. 이렇게 습득한 지식만이 나의 가치관에 녹아들어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와준다. 더 나아가 읽은 내용을 글로 써서 타인과 공유한다면, 그 사유의 깊이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결국 읽기를 통해 지식을 쌓고 생각하는 힘은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다. 우리는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만의 주체성을 지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사유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인간이, 영화 '매트릭스'처럼 배터리 역할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읽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다움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은 영원히 독서할 것이다.
읽는 인간만이 존엄을 유지하게 된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