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티켓을 건넸다. 연극 '비밀통로'가 요즘 그렇게 평이 좋다며 다녀오란다. 사실 아내의 목적은 극의 내용보다 무대 위에 서는 잘생긴 주연 배우에게 있는 듯 보였지만, 굳이 캐묻지 않고 모른 척 넘겨주기로 했다. (부부 사이에도 적당한 모호함은 평화를 가져오는 법이다.) 비 내리는 저녁, 그렇게 혼자 대학로로 향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대학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쇠락의 길을 걷다 못해 황량해진 이대나 신촌과는 확실히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공연장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 동네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 생각했다. 트렌드는 변해도 무대라는 실체적 공간이 주는 힘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 모양이다. 자본이 빠져나간 자리를 낭만이 꽉 붙들고 있는 느낌이랄까.
오늘의 캐스팅은 김선호 배우였다. 아내가 말한 그 잘생긴 사람. 포스터 속 얼굴이 확실히 반짝반짝했다. 사진과 실물의 괴리가 얼마나 클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직접 확인해 볼 기회다. (실제로 연극무대의 그를 보니, 참 핸섬하더라, 키도 크고 말이지) 잘생긴 배우를 보는 것은 눈의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연기의 밀도가 외모를 압도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더 큰 재미였다.
일본의 극작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원작 '허점의 회의실'을 한국적 정서로 각색한 작품이다. 생과 사의 경계, 그 모호한 밀실에서 기억을 잃은 채 마주한 두 남자는 서가에 놓인 책들을 통해 억겁의 전생을 복기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행위를 넘어,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 얽힌 인연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백미다. 90분이라는 시간은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아니라,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쉼표로서의 ‘통로’를 사유하게 만들었다. 짐작하겠지만, 역시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 윤회의 정거장 역할을 하는 통로. 그래서 제목이 '비밀통로'로구만.
공연장은 쾌적했다. 특히 앞사람의 머리에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좌석 단차가 세심하게 설계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연극은 기획만큼이나 운영의 디테일이 중요하다. 관람에 방해되는 요소가 제거되니 오롯이 극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암전과 함께 시작된 이야기는 순식간에 나를 현실 너머로 끌고 들어갔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산을 들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어떤 인연일까. 수만 년, 아니 억겁의 시간 동안 윤회를 거듭하며 맺어진 필연적인 끈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도, 아내도, 아들도, 형제자매도, 친구들도, 우리는 각자의 생에서 다른 역할을 맡아 서로 가까이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
불교에서는 이를 '겁(劫)'의 인연이라 말한다. 옷깃만 한 번 스치는 데도 오백 생의 인연이 필요하고, 같은 나라에 태어나는 데는 천 겁, 하룻밤을 같이 머무는 데는 이천 겁의 시간이 쌓여야 한다고 한다. '겁'이란 집채만 한 바위를 선녀의 비단옷이 스쳐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다. 지금 내 옆의 인물들이 얼마나 기적 같은 확률로 내게 도착했는지 새삼 소름이 돋는다.
나는 요즘 키아누 리브스의 이 말을 자주 꺼내 읊어본다. “난 외톨이여도 괜찮고, 인간관계가 좁은 것도 상관없다. 나는 나 자신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이제는 그저 나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하고만 함께하고 싶다.”
인연의 무게를 알기에, 오히려 불필요한 관계를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태도다. 늘 그렇지만,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가장 건강한 법이다.
결국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내 곁에 남은 소중한 인연들에게 더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이다. 다음 생에 우리가 어떤 관계의 비밀통로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
아내 덕분에 좋은 연극을 보았고, 덕분에 잊고 지내던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고 배웠다. (일단 오늘 저녁 설거지는 내가 해야겠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반야바라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