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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ug 19. 2021

주문진, 그 푸른 바다 3

2021년 8월 6일 ~2021년 8월 8일

파도소리.

잠결에 들리는 파도소리. 이렇게 크게 들릴리가 있나. 누가 스피커를 켜놓았나.

아침이다. 

일어나서 창밖을 본다. 바다가 생각보다 아주아주 가깝다. 이래서 파도소리가 컸군. 어제는 저녁에 와서 칠흑처럼 어두운 바깥일 뿐이어서 몰랐다. 저기가 바다였구나. 나는 저 길을 따라 정신없이 뛰어갔던 거였구나.


바다에 가보자.

서울에서 사 간 튜브를 꺼내서 불어본다. 다이소에서 산 수박모양 튜브에 바람을 넣어본다. 옆에서 기대에 부푼 얼굴로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쳐다보는 아들 덕분에 기분이 좋고 힘이난다. 역시, 사오길 잘했다. 얼마만에 튜브를 입에 물고 바람을 넣어보는 거지. 머리가 띵하다. 쉭쉭 튜브는 모양을 갖춘다. 아들과 아내 그리고 나는 편하게 수영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날씨도 좋구나. 

길을 걸어 얼마간 가니 해변이 나온다. 해변 입장을 위해서는 체온 체크와 방명록 기입이 필수다. 체크와 기입이 끝나면 손목에 입장 확인 팔찌를 걸어준다. 이게 없으면 해변에서 쫓겨나나보다. 그렇지 우리나라는 이렇게 잘 통제하고 있다. 힘들게 일일이 체크하시는 분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해변에 내려간다. 

주변 사람들과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는다.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는 작은 해변이다. 


한적한 주문진 해변. 물은 맑고 투명하다. 지구는 이렇듯 인간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아들과 아내와 바다에서 이렇게 모래놀이를 하고, 물놀이를 하는게 얼마만이지. 바닷속에 들어가는 건 처음인건가. 아들이 이렇게나 컸구나. 참 새삼스럽다. 아내가 저렇게 행복해 하는데 진작 좀 올걸. 별 생각이 다 든다. 코로나로 잊고 있던, 별 것 아닌 행복이 물밀듯이 쏟아든다. 

지난 몇 년 사이 직장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나를 메마르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나는 왜 잊고 있었을까. 행복은 멀리 잊지 않은데 말이다. 맨발로 해변의 모래사장을 밟는 느낌이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발바닥에 닿는 가는 모래의 감촉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다.


아들과 해변에서 모래로 성을 쌓고, 물길을 만들고, 신나게 낄낄대면서 놀고 있노라니. 이제는 '놀아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같이 논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아들은 컸다. 점점 내 친구가 되어간다. 나도 아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겠다.


몇 시간 해변에서 놀고 점심 무렵 철수했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아내가 이끄는 근처 막국수 집에 가서 막국수를 먹었다. 아내는 일주일 먼저 와서 지내더니 벌써 주문진 지역 전문가가 다되었다. 맛집 소개에 거침이 없다. 

아들은 방에서 쉬고 싶다고 해서, 간단한 즉석밥을 차려주고 아내와 둘이서만 나왔다. 이제 컸구나 우리 아들. 아들이 조금 더 크면, 더 이상 우리를 따라나서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컸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혼자 지내는 것이 좋은 시기가 왔었다. 그걸 사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식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부모로부터 독립해나가는 과정이다. 자연스럽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아쉽다. 그래서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늘상 같이 있진 않지만, 평온하고 평범한 부모자식 관계를 유지하는 것. 어렵지만 잘 해보고 싶은 미션이다.


비빔국수 하나 기름막국수 하나. 물놀이 후 먹는 점심은 메뉴와 상관없이 꿀맛이다. (하지만 여기는 맛집이기도 하다.) 아내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이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먹는 즐거움은 놓치기 힘들다. 그렇기에 절제와 만족의 균형을 찾으려 늘 노력해야 한다. (이 글이 왜 자꾸 노력 시리즈가 되어가는거지. 이건 주문진 여행기인데.)


조금 쉬다가 산책을 가기로 했다.

'향호'라는 호수까지 걸어가보기로 한다. 힘들어서 투덜대는 아들을 살살 달래고 꼬셔서 가본다. 가는데 비가 내린다. 날씨가 정말 순식간에 휙휙 변한다. 근처 카페에 들러서 비를 피하고 쉬어간다. 청포도와 딸기 쥬스를 마신다. 달고 시원하다. 

다시 걷는다. BTS가 화보를 찍었다는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우리도 한장 찍어본다.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찍는다.


숙소로 돌아온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바닷가라 눈이 트이고 멀리 볼 수 있어서 좋다. 아내와 나는 걷는 걸 좋아해서 즐겁게 걷지만, 아들은 너무 많이 걸어서 기분이 안좋다. 하지만 잘 달래서 걸어본다. 여기까지 와서 택시로 이동하는 건 아쉬우니까. 이렇게 바닷가 길이 잘 닦여져 있는데 택시가 웬말이냔 말이다. 

잘 달래서 걷는데, 이번엔 비가 온다. 엎친데 덮친격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어쩔 수 없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걷자 아들아. 지금은 택시도 못잡는단다. 

언젠간 아들과 제주 올레길이 됐든, 서울 도성길이 됐든 트래킹을 같이 해보는게 소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조금씩 걸어보려고 하는데, 아들은 영 걷기가 싫은가보다. 그래도 이렇게 같이 나와주는게 어딘가. 착한 우리 아들. 내가 조금 더 노력해보면, 언젠간 둘이 웃으며 같이 멀리멀리 걸어가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나는 노력파가 되어야 하나보다. 이 글에서 벌써 몇번째 노력인가)


오전에 물놀이, 오후 긴 산책으로 지친 우리는 숙소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는 족발. 

하지만 주문 캔슬. 너무 멀단다. 배달 불가 지역이란다. 아내는 굴하지 않는 성격이다. 재차 주문 시도를 해서 결국 해낸다. 이렇게 먹는 저녁은 맛이 없을 수 없지. 역경을 극복하고 얻어낸 것은, 그 무엇이든 값지고 소중하다. 숙소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TV를 보며 낄낄 웃으며, 저녁을 먹노라니. 천국이 따로 없다. 그래,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강원도에서의 하루가 또 저문다.


주문진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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