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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Nov 09. 2021

다시, 제주에 혼자 왔습니다 1

20211108~2021112

20211108


일주일 휴가를 얻어 제주에 가는 날이다.

공항가는 길에 허둥대기 싫어 6시에 기상했다. 일찍 준비하면 허겁지겁 하지않고, 우아하게 움직일 수 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 그것이 여행의 매력)

어젯밤 준비한 옷을 입고,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하아.

(우아하게 이동하긴 글렀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버스로 이동을 해야겠다. 6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 버스에 사람이 많다.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 본적이 언젠지 기억이 안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찍 출근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이 많은 9호선에 타보니, 그나마 편하게 출퇴근 할 수 있었던 지난날들이 새삼 고맙다. 그만큼 힘들어할 아내가 안쓰럽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비가 점점 거세진다. 출발지연 방송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과연 제주는 제 시간에 출발할 수 있을까? 기다리며 책을 꺼내 읽는다. 오늘의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가의 살인 사건', 비오는 공항에서 읽기에는 추리 소설이 제격이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과연 비행기가 뜰 수 있는걸까. 걱정이 좀 되어 창 밖을 찍어봤다. (사진으로는 표현이 잘 안된다. 나는 사진은 안되나보다.)

기장님 화이팅


제주 도착. 제주에도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는 비바람에 야자수가 힘없이 휘날린다.


600번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한다. 이 버스는 특이하게 행선지를 말하면 기사님이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단말에 찍고, 손님은 그 이후에야 카드 태깅으로 결제를 한다.

기사님 : '어디까지 가세요?'

승객 : '삑' , '어? 아저씨 이거 카드 안찍혀요 왜?

기사님 : '어디까지 가시냐구요~'

승객 : '삑삑' , '이거 고장났어요 아저씨'

기사님 : '어디까지 가시는지 말씀을 해주셔야 제가 금액을 입력해요~'

승객 : '아 그래요? 내가 어디까지 가더라? 잠깐만요 통화좀'

행선지를 묻는 기사님과, 왜 안찍히냐고 되묻는 승객들과의 답 없는 대화.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헤이, 서귀포'


혹시나 '헤이, 서귀포'에 묵으실 분들을 위해 한가지 정보를 드린다면. 지금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무조건 오션뷰를 배정받을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 건물 뒤에 오래된 건물이 하나 더 있다.(함정?) 그 건물에 묵을 가능성이 있다. 뒷편 건물의 객실 분위기나 상태는 오래된 모텔을 개조(?)한 느낌이다. 잘 알아보고 예약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근처 '올레 시장'으로 갔다.

시장 안에 있는 작은 국수집에서, '고기 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진한 고기국물이 마치 설렁탕에 국수사리를 넣어서 먹는 느낌이다. 만족스럽다.

맛있어서 또 오고 싶다.


비가 멈춰서, 바로 올레길 6코스를 걸으러 출발했다.

언제 또 좋은 날씨를 만날지 모르니, 기회가 있을 때 걸어야 한다.

비온 뒤라 걷기에 상쾌하다.



올레 6코스


올레길은 제주에서 잘 관리해준 덕분에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 나무나 표지판등에 묶어놓은 리본만 따라가면 된다. 물론 리본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단점이 있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리본을 못 찾고 길을 헤매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리본을 조금 더 촘촘히 달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많이 바쁘실테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6코스를 걸으며, 길을 크게 벗어나 20분 정도 엉뚱한 길을 걷고 헤매게 됐다. (힘도 들고, 속상했다.) 왜 그랬냐면, 누군가 엉뚱한 리본을 비슷한 위치에 잘못 걸어놨기 때문이다. 나는 그 리본이 올레길 표식인 줄 착각하고 따라갔던거다. 중간중간 그 '이상한' 리본은 자주 눈에 띄었다. 화가 나서 가까이 가서 봤더니, 어떤 '종교 단체'에서 달아놓은 것이더라. 하아. 말을 줄이겠다.

이런 멋진 자연 앞에서 화내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내가 더 조심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해본다.


날씨가 좋아서 신나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두워진다. 비구름이 몰려온다. 우의를 준비하긴 했는데, 그래도 비오는 날에 오름을 오르기는 부담스럽고 위험하기도 하다. 어쩌지, 게다가 늦게 출발해서 해가 질지도 모른다. 오늘 올레길을 도전하는 건 좀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은 정비하고, 둘째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게 맞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출발했으니 돌이킬 수 없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


 
사이좋게 정박한 작은 배들


역시나 6코스에도 '오름'이 있다. (이름은 기억 안난다.) 오름을 오르는데 해가 지면서 날이 어두워져서 으스스했다. (나는 겁이 많다) 역시, 혼자 걷기에 늦은 시간은 좋지 않다. 아침 일찍 걸어야 한다.

오름의 계단
올라갈 땐 힘들지만, 정작 오르면 눈이 트이는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간은 '멀리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름 정상에 오르니, 주위가 어둑어둑하다. 해가 지고 있다. 오름에서 해가 저물면 '리본'을 찾을 수 없어 위험하다. 게다가 비온 뒤라 산에는 젖은 낙엽과, 이끼 낀 바위들이 가득하다. 잘못해서 미끄러지면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들은 몹시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부디 다른 분들은 이른 시간에 걷길 바랍니다.)

또한, 위와 같은 이유로 발목이 높은 등산화를 착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발목은 생각보다 쉽게 돌아갑니다.

얼른 내려간다. (거의 뛰다시피 내려갔다)

버려진 닻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그림같은 등대, 둘은 친구인건가
6코스의 종착지 '쇠소깍'

드디어 쇠소깍에 도착했다. 3시간 조금 넘게 걸었다. 새벽부터 비행기로 이동하고, 걸었더니 많이 피곤하다. 하지만 해냈다. 또 한번 작은 성취를 이뤘다. 뭐든 하면, 이룰 수 있다.


6코스 시작점(나는 6코스 종착지에서 시작점으로 코스를 거꾸로 걸었다.)에 도착하자마자 해가 지더니 주변이 깜깜해졌다. 숙소로 가야하는데, 휴대폰 배터리는 5% 이하고, 주변에는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칠흑같은 어둠 뿐,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상황이다. 지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제주 버스는 일찍 끊긴다. 일단 버스정류장까지 다시 걸어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쯤되어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내가 아는 여자분들이 혹시 올레길을 혼자 걷기로 한다면 말릴 것이다.(최근에 올레길을 몇 코스 걸어본 경험에 따른 개인적인 의견이다) 올레길은 여자 혼자 걷기엔 안전하지 않다. 명백하다. CCTV도 인적도 없는 외진 길을 혼자 걷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최근에 이런저런 실종 사건도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여성의 의사결정을 무시한다거나, 능력을 폄하하는 내용이 절대 아니다, 위험한 건 위험한거다. 혹시나 올레길을 걸을 예정이라면, 반드시 친구와 함께 하시라. 혼자는 안전하지 않다. 올레길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다.


어둠 속에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하며 30분 정도를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숙소로 돌아와 저녁으로 컵라면을 하나 먹었다.

씻고 그대로 잠들었다.


제주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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