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
몇 살 때였는지, 어느 동네 목욕탕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날의 모든 것이 흐릿하다.
아마 쪼그만 내 몸에 비누 샤워를 쓱싹시킨 엄마가 이제 때 잘 밀리게 저기 온탕에 가서 좀 앉아 있으라고 했겠지. 빠글빠글한 할머니들이 가득한 온탕에 쭈뼛쭈뼛 들어가서 시계 분침을, 그마저도 참지 못하고 초침을 보며 투덜댔을 게 뻔하다. '어지러운데, 왜 꼭 몸을 불려야 때를 밀 수 있는 것인지. 박박 밀어도 뭐가 나오지도 않는데 왜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지.'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겠지만, 시계가 멈춘 것 같다. 결국 몇 분 되지 않아 습한 공기와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왔을 거다.
"엄마"
"..."
"엄마, 나 다 했어."
"..."
"아 엄마!"
그리고 아직도 잊히지 않는 생판 처음 보는 벌거벗은 아줌마의 황당한 표정. 아줌마는 어깨를 툭툭 치며 떼를 쓰는 나를 그저 돌아봤을 뿐인데, 그 눈빛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원히 잊히지 않는 수치심으로 남았다. 바로 옆 혹은 그 옆 파란 의자에 앉아, 발 각질을 제거하던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곧바로 울음을 터트렸을 거다. 엄마한테 뛰어가 괜히 짜증을 냈다. 엄마 잘못도 아닌데, 내가 그냥 엄마 자리를 착각했을 뿐인데. 아줌마의 뒷모습이 우리 엄마랑 비슷했을 뿐인데. 자꾸자꾸 화가 났다. 머쓱함에 애먼 손톱만 물어뜯으며 집으로 돌아왔을 거다. 엄마 손은 꼭 잡고서.
밍밍한 온탕 대신 열탕에서 몸을 지진다. 여전히 시간은 잘 가지 않지만, 세신사 아주머니가 적당한 때에 눈짓을 주신다. 미끈미끈한 때밀이 침상에 바로 누웠다, 왼쪽으로 돌았다 엎드렸다 다시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반쯤 잠들 즈음 세신이 끝난다. 물로 헹궈내고 탈의실로 돌아와 현금 이만 오천 원을 낸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물 한 잔 시원하게 마시고 터덜 터덜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제 더 이상 엄마를 잃어버릴 일은 없지만, 눈부신 햇살에 여전히 갈 곳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