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살에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찾아보는데 없다 없어
그렇게 아끼고 모았더니
똥꼬 빠지게 고생해서 1억 모으면 인생 달라지는 줄 알았다. 개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히 조급한 마음이 일어 잘 알아보지도 않고 투자를 했다. 시발비용으로 써버리지 않은 게 어디냐 싶긴 하다마는 어줍지 않은 지식으로 덜컥 큼지막하게 투자를 하고 나니, 남은 건 마이너스 통장뿐. 전재산을 털어 로또를 산 기분으로 심장이 쫄깃하다.
살면서 처음 받아본 대출의 압박이 나를 조여 온다. "회사 그까짓 거~ 때려치우면 되지 뭐~"라고 했던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투정이었는지 깨닫는다. 이제 빈말이라도 퇴사하겠다는 얘기는 절대 못하겠다.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라는 말의 뜻을 절실하게 깨닫는 중.
철 없이 오래오래 온실 속 화초를 꿈꿨지만, 어째 점점 잡초가 되어간다. 잘리지만 않으면, 책상이 화장실 앞에 가 있지만 않으면 아무래도 이번 생에 내 발로 회사를 박차고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제가 고점에서 샀다구요?
짠테크, 이제 그만두려 했더니
한동안 명품 열풍이더니만, 나만 명품 못 산 사이에 물가가 너무 올랐단다. 원래도 비싸서 못 샀는데, 더 비싸졌다고? 물가를 잡으려고 미국을 필두로 금리를 올리니, 다시 절약 할 때란다. 아니 또 아끼라고? 철들고 한 번도 경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코로나 지원금 한 번 못 받아보고 또 시작이다.
"2030 패닉 바잉 한 영끌족 위기!"라는 기사가 연일 터진다. 거기에 “미국 연준의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 울트라 스텝!!! “ 천조국 스케일은 도대체 어디까지 커지는지 천날만날 파월 아저씨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뉴스에 난다.
맨날 경제 위기라니, 이게 진짜인지
미국에서 불어오는 위기설에 명품족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직장인의 눈물나는 짠테크 열풍 기사가 흘러넘친다. 종이 한 장 뒤집기보다 빠른 경제 흐름과 태세 전환. 이 세계적인 유행(?) 나는 못 따라가겠다. 새삼 미디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 깨닫는 중
'후. 그럼 내년 1월에 마이너스 통장 갱신되기 전에 빚이나 빨리 갚아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갱신 안 해도 마통 금리는 자동으로 반영이 되네? 갑자기 내 마이너스 통장 금리가 1% 가까이 올랐다. 예적금은 안 그러면서 대출은 왜...? 이렇게 빨라? 하여튼 은행 돈 버는 거 못 참지 못 참아!!!!!!
웃프고 쓴 현실 세상
열받아서 돈 좀 써보려고 하는데, 이제 진짜 도시락 싸기, 가까운 거리 걷기, 따릉이 타기, 당근 하기, 미니멀리즘이 이 곧 내가 된 건지. 막상 필요한 게 없다. 살 게 없어서 강제 저축, 자동으로 짠테크하는 아이러니.
살 게 없어서 빚을 갚은 탓에 아마 올해 10월이면 잔고가 다시 플러스가 될 참이다. 예적금 이율, 파킹 통장 이율이 아무리 오른대도 부자가 되기엔 택도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제 왜인지 신문에서 유행이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 짠테크, 예금, 적금, 현금 보유...
그럼 뭐하지
요즘은 또 해본 적도 없는 엔화, 파운드 투자에 눈이 돌아간다. 오피스텔 중도금도 쳐야 하고, 혹시 세입자가 나간다고 하면 전세금도 내어줘야 하는데. 총알 장전이 필요한 때인 걸 알면서도. 당장 쓸 일 없는 현금만 미국 ETF에 투자하기로 해놓고. ‘환율 박살나니 에라이~ 어차피 미국 망하면 우리도 망해~~~ ‘하면서 또 기웃기웃.
이번엔 마음이 급해서라기 보단, 심심해서? 자포자기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는 한참 글렀고, 서른두 살에는 택도 없을 것 같으니 마흔두 살 즈음을 노려보는데. 아니 사실 마흔두 살 때까지 붙잡고 있을 수 있는 희망 한 자락, 재미 한 스푼이라도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한 주를 로또로 버틴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차피 모르겠는 투자를, 삶을 도박판에 걸어버린 건 아닌지. 환투기 한번 츄라이 해? 말어? 빨리 불려서 부동산을 하나 더...?!
아마 1억 모은 후기, 10억 모은 후기는 넘쳐도 그 사이 2억 모은 후기가 없는 건 다들 나 같은 상태, 이 작은 한국 땅 덩어리에서 흐느적 흐느적 뭐라도 안 하면 못 버틸 것 같은 근질근질한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려나. 다들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서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