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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01. 2022

적당히 가난할 수는 없을까

짠테크, 무지출이 유행이래요

한동안은 명품 없는 MZ가 없다며 자사몰 마냥 샤넬백 가격을 읊어대던 신문들이 이제는 올라버린 물가에 2030 사이에서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이라고 호들갑이다. 몇 개월 사이에 들리고 보이는 이야기가 180도 달라졌다.


매운맛, 빨간 맛, 자극적인 맛. 금리가 오르고, 소비/투자 심리가 위축되면, 경기가 위축되는 건 잘 알겠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처음 안 것도 아닐 텐데. 대충 이렇게 될 거 다 예상하고 있었으면서 발등에 불 떨어지니까 가뜩이나 불안한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적당히 가난할 수는 없을까. 신용카드를 자르고(물론 나도 잘라봄), 도시락을 싸거나 굶고, 커피는 끊고, 돈 쓰지 말고 시간을 보내라고 한다. 아니, 여기서 얼마나 더 아끼고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보면 맨날 쇼핑에, 외식에, 펑펑 쓰고 살았는 줄 알겠다.


내가 쓰면 얼마나 쓴다고. 이미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강제로 머릿속에 계산기를 들고 산다. 애초에 쓸 돈이 여유있다고 느끼지를 못 해왔다. 적은 월급이라도 모아보겠다고, 점심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닌 지 오래다. 허기짐은 탕비실에 공짜 간식으로 달래고. 택시? 그것도 회사에서 야근한다고 수당은 없이 택시비를 주니까 탄 거지. 내 돈으로 택시가 웬 말인가. 버스비도 아까워서 걸어 다니던 마당에. 명품? 로드샵에서 기초 화장품 살 때도 세일 기간 맞춰서 간다.


이렇게 미니멀하다가 없어지겠어요. 집에 더 버릴 것도, 내다 팔 것도 없는데 이미 당근 전에 중고나라 시절에 싹 다 팔았는데. 알라딘을 몇 번을 오가서 쓰지도 못하고 그 몇 만 원도 통장에 고이 모셔두었는데. 자꾸만 줄이라고 한다. 도대체 뭐를 얼마나 더 줄이란 말인가. 나를 가져다 버리라는 건가.


아끼지 말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게 나름 알뜰살뜰하게 살고 있다. 사치라니. 진짜. 돈 이거보다 더 아끼다 사람 잡는다. 만약 내가 월급 200만 원이던 시절에, 스트레스 풀겠다고 한 달에 꼬박꼬박 동네 요가원에 10만 원씩 쓰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숨통조차 없었다면 나는 그 뒤로 몰려온 현실 세계의 고난들을 절대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잔고만큼이나 내 몸과 멘탈을 오래오래 지켜줄 수 있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돈 안 쓰고도 할 수 있지 않냐고? 솔직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비 '단식'을 하면서, 지출을 '무'로 틀어 막으면서 시간을 어떻게 쓰나. 그건 진짜 혼자 놀기에 특화되어 태어났거나 이미 돈 써서 즐길 거 어지간히 경험해본 사람들만 할 수 있다. 아니, 뭘 '잘'할 줄 아는 게 있어야 혼자 가만히 돈 안 쓰고 하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의지의 문제라고? 진짜 의지도 뭐가 될 것 같아야 생기지.   


그럼 일단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아니 그럼 진짜 빈 시간에 뭘 하죠. 나도 아무나 만나서 웃고 떠드는 거 안 좋아한다. 대학교 때 술값을 그렇게 쓰고 다녔지만, 첫 번째 회사를 나오고,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코로나를 겪고, 생각보다 인간관계가 실제로 내 인생에 덜 중요해지자 자연스럽게 그쪽에 쓰는 돈이 줄었다. 그럼에도 이 무료한 삶 와중에도 여전히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다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순간이다.


돈 쓸 구멍 하나 두개 쯤은 뚫어 놔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모든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운 건 아니다, 오래 감당하지도 못할 개인 PT를 끊은 돈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다. 투자한다고 까먹은 돈 때문에 아직도 속이 쓰리다. 그 때 그 돈 왜 썼지 후회하는 거 없을 리가. 그래도 여기저가 어쩌면 필수생활비가 아닌 돈과 시간을 쓰다가 어쩌다 알게 된 사람들 덕분에, 우연히 만난 요가 덕분에, 뭣도 모르고 산 집 덕분에 하루를 살아갈, 삶을 버텨낼 위로와 힘을 얻는다.


꼭 운동이나 사람, 투자가 아니라도 돈 버는 이유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사는 게 팍팍한데 얼마나 더 쥐어짜라는 건지. 마른걸레도 짜면 뭐라도 나온다던 옛 상사의 아찔한 멘트가 생각난다. 찢어진다. 찢어져. 그리고 걸레든 사람이든 한번 찢어지면 회복해도 무조건 흔적이 남는다. 평생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괴하게 되는 상처. 내 탓 할 바에 그냥 좀 더 쓰고 살면 인생 진짜 현저하게 망하는 건가.


나 왜 이렇게 흥분했지? 누구한테 화가 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경기 사이클을 거칠 때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 구조인지, 그 양극화를 더 부추기는 미디어인지, 그렇게 속아서 나에게 상처인 걸 알면서도 살려고 아등바등했던 나인지. 아니면 나를 닮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속상해서 그런지.


아무튼 적당히 아끼고, 적당히 가난하게 살자. 밥그릇 지키려다가 목숨이 사라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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