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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20. 2022

엄마 아빠는 참 배짱도 좋으셔

노후가 준비되지 않은 부모님께 얹혀사는 자들의 불안

모든 면에 있어서 나와 반대인 동생이 있다.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심지어 그 흔한 MBTI 한 글자도 겹치지 않는다. 덤벙거리고 즉흥적인 데다 감당하지 못할 일 벌이기 선수인 나를 보다가, 차분하고 계획적이고 섬세하게 정돈된 동생을 보면 아무리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지만 확실히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거의 165도쯤 다른 우리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둘 다 나름대로 엄청나게 현실적이라는 거다. 가난했다고 말하기엔 약간 기만인 것 같고, 미래에 대한 대책이 없는 불안정한 성장기를 공유했기 때문이려나.



동생은 학생 때부터 착실히 한 분야를 준비했다. 자격증이 꽤나 필요한 업계여서 늘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취업 스터디도 성실하게 나가고. 결국 1년 간의 취업 준비 생활 끝에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데다 돈도 꽤 주는 준 공공기관에 자기 자리를 얻었다. 고진감래가 이런 건가. 내 동생이지만 진짜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였으면 진즉에 때려치웠을 텐데.


내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했던 것 같은데. 난 (지금은 아니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은 딱 질색인 데다, 회사원이 되어 어딘가에 얽매이기 싫었다. (회사님 감사합니다) 학교 공부도 저학년 때 할 일 없어서 해둔 게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졸업 못할 뻔했다.


하지만,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현실과 타협해서 IT 스타트업에 발을 들였다. 최저시급에 가까운 돈이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나를 안심시키기는커녕 매해 연봉협상 때마다 열심히 준비해서 몸값을 올렸다. 이직도 자주 했고. 현장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이제 좀 먹고살만해졌다. 내 4년 차 때 연봉이 동생 초봉 즈음되려나.



아무튼 이제 둘이 합쳐 연 1억은 거뜬히 번다. (아마 그럴걸?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쌓아둔 게 없어서 우리는 여전히 엄청 짠순이이다. 사실 동생 앞에서 나는 개망나니 수준이긴 한데. 내 동생은 일단 어디에 특판 금리로 적금이 나왔다? 하면 멀어도 무조건 간다. 한 달 생활비는 교통비, 통신비 등등 다 포함해서 80..? 교통비 아끼겠다고 알뜰 광역교통카드인가. 앱으로 열심히 스탬프 찍고 있다. 와중에 교회를 다니셔서 십일조도 한다. 십일조 하고 나면 한 달에 30만 원이 용돈이라나.


그 와중에 미용과 패션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종종 값비싼 쇼핑도 하고, 부모님을 포함해 나 빼고 주변도 알뜰살뜰 잘 챙기는 거 보면... 대단하다. 회사에는 도시락을 싸다니고, 혼자 있을 때는 배고파도 굶는다나...? 진짜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돈을 모은다.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전부터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신 분이 여기 계십니다. 초년생 때는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아무튼 얘보단 아니다. 갑자기 동생 잔고가 궁금하네.


나는 또 나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카테고리가 있다. 바로 여행과 요가. 요즘은 한국에서도 꽤나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서 여행 뽐뿌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일상과 거리를 두면 뭐라도 좀 더 잘 써지고, 환기가 된다. 요가는 살려고. 가만히 있으면 체력도, 지방도 감당이 안되니 산소호흡기처럼 달고 살아야 한다.


취미나 경험 말고 나머지 부분은 나도 잘 안 쓴다. 일단 취미를 위해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꽤 필요해서 사람 만나는 걸 좀 포기했고, 용모는 그냥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무조건 기본템을 장착한다. 혹시 주변 사람들은 내가 부끄러울까? 그럼 꾸밈비 지급하시던가요~! 급발진  데이트나 가끔 꼭 챙겨야 하는 경조사 빼면 특별히 지출이 없는데 왜 체감 매달 1,000원씩 모아 1억 쓰는 기분인지 ^_^? 동생 얘기를 먼저 쓰고 나니 나의 짠테크는 더 이상 짠테크가 아닌 기분이. 머쓱.


아무튼 둘 다 돈 벌기 시작하자마자 1억을 모아 집을 사겠다고 각자의 레이스를 시작했다. 물론 그 레이스가 끝나기 전에 폭등이 와버렸지만. 난 성격이 급해서 아 몰랑~ 경기도에라도 집을 샀고, 진중한 동생은 돈 모으는 동안 집값 조금 떨어지면 서울에 집 사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분명 올 가을부터는 서울로 임장 같이 다니기로 했는데, 지난주에 부동산이 아니라 백화점에 갔다.(?) 이 무슨 급전개...? 아무튼 오랜만에 가는 백화점에 나는 요즘 결혼하는 친구들이 한창 예물로 받는 명품백과 보석에 잠시 눈이 머물렀다. 옆에서 동생이 조용히 말한다.


언니, 난 솔직히
엄마 아빠가 노후 준비만 되어있어도
여행도 좀 더 자주 가고
저런 것도 한 두 개쯤 사면서 살 것 같아.

엄마 아빠는 아직까지 집도 없으면서
우리 보고 걱정 말고 시집이나 가라는 거 보면
참 배짱도 좋아.


맞다. 우리가 오랫동안 공유해온 이 불안은 당장은 아니어도 (심지어 지금 엄빠가 사시는 집에 얹혀살고 있으면서) 언젠가 부모님의 거처와 노후를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엄마 아빠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 부모님이 희생해온 삶을 알면서 어떻게 생각을 아니할 수 있겠는가. 수저 없다며 원망할 나이도 시기도 지났고, 아직 드린 것도 없다.


출처 : jtbc


동생아, 이왕 이렇게   우리는 열심히 모아서 투자하는 직장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김이나  말처럼 우리의 콤플렉스가 언젠가 우리 나름의 멋진 결이  거야.


너는 패셔너블한 직장인 투자자.
나는 글쓰는 취미 부자 직장인 투자자.


서울에  여러  사야지. 엄마 아빠 , 네꺼,  . 이번주도 열심히 벌고, 다음 주에는  임장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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