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가 준비되지 않은 부모님께 얹혀사는 자들의 불안
모든 면에 있어서 나와 반대인 동생이 있다.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심지어 그 흔한 MBTI 한 글자도 겹치지 않는다. 덤벙거리고 즉흥적인 데다 감당하지 못할 일 벌이기 선수인 나를 보다가, 차분하고 계획적이고 섬세하게 정돈된 동생을 보면 아무리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지만 확실히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거의 165도쯤 다른 우리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둘 다 나름대로 엄청나게 현실적이라는 거다. 가난했다고 말하기엔 약간 기만인 것 같고, 미래에 대한 대책이 없는 불안정한 성장기를 공유했기 때문이려나.
동생은 학생 때부터 착실히 한 분야를 준비했다. 자격증이 꽤나 필요한 업계여서 늘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취업 스터디도 성실하게 나가고. 결국 1년 간의 취업 준비 생활 끝에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데다 돈도 꽤 주는 준 공공기관에 자기 자리를 얻었다. 고진감래가 이런 건가. 내 동생이지만 진짜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였으면 진즉에 때려치웠을 텐데.
내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했던 것 같은데. 난 (지금은 아니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은 딱 질색인 데다, 회사원이 되어 어딘가에 얽매이기 싫었다. (회사님 감사합니다) 학교 공부도 저학년 때 할 일 없어서 해둔 게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졸업 못할 뻔했다.
하지만,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현실과 타협해서 IT 스타트업에 발을 들였다. 최저시급에 가까운 돈이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나를 안심시키기는커녕 매해 연봉협상 때마다 열심히 준비해서 몸값을 올렸다. 이직도 자주 했고. 현장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이제 좀 먹고살만해졌다. 내 4년 차 때 연봉이 동생 초봉 즈음되려나.
아무튼 이제 둘이 합쳐 연 1억은 거뜬히 번다. (아마 그럴걸?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쌓아둔 게 없어서 우리는 여전히 엄청 짠순이이다. 사실 동생 앞에서 나는 개망나니 수준이긴 한데. 내 동생은 일단 어디에 특판 금리로 적금이 나왔다? 하면 멀어도 무조건 간다. 한 달 생활비는 교통비, 통신비 등등 다 포함해서 80..? 교통비 아끼겠다고 알뜰 광역교통카드인가. 앱으로 열심히 스탬프 찍고 있다. 와중에 교회를 다니셔서 십일조도 한다. 십일조 하고 나면 한 달에 30만 원이 용돈이라나.
그 와중에 미용과 패션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종종 값비싼 쇼핑도 하고, 부모님을 포함해 나 빼고 주변도 알뜰살뜰 잘 챙기는 거 보면... 대단하다. 회사에는 도시락을 싸다니고, 혼자 있을 때는 배고파도 굶는다나...? 진짜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돈을 모은다.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전부터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신 분이 여기 계십니다. 초년생 때는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아무튼 얘보단 아니다. 갑자기 동생 잔고가 궁금하네.
나는 또 나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카테고리가 있다. 바로 여행과 요가. 요즘은 한국에서도 꽤나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서 여행 뽐뿌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일상과 거리를 두면 뭐라도 좀 더 잘 써지고, 환기가 된다. 요가는 살려고. 가만히 있으면 체력도, 지방도 감당이 안되니 산소호흡기처럼 달고 살아야 한다.
취미나 경험 말고 나머지 부분은 나도 잘 안 쓴다. 일단 취미를 위해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꽤 필요해서 사람 만나는 걸 좀 포기했고, 용모는 그냥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무조건 기본템을 장착한다. 혹시 주변 사람들은 내가 부끄러울까? 그럼 꾸밈비 지급하시던가요~! 급발진 데이트나 가끔 꼭 챙겨야 하는 경조사 빼면 특별히 지출이 없는데 왜 체감 매달 1,000원씩 모아 1억 쓰는 기분인지 ^_^? 동생 얘기를 먼저 쓰고 나니 나의 짠테크는 더 이상 짠테크가 아닌 기분이. 머쓱.
아무튼 둘 다 돈 벌기 시작하자마자 1억을 모아 집을 사겠다고 각자의 레이스를 시작했다. 물론 그 레이스가 끝나기 전에 폭등이 와버렸지만. 난 성격이 급해서 아 몰랑~ 경기도에라도 집을 샀고, 진중한 동생은 돈 모으는 동안 집값 조금 떨어지면 서울에 집 사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분명 올 가을부터는 서울로 임장 같이 다니기로 했는데, 지난주에 부동산이 아니라 백화점에 갔다.(?) 이 무슨 급전개...? 아무튼 오랜만에 가는 백화점에 나는 요즘 결혼하는 친구들이 한창 예물로 받는 명품백과 보석에 잠시 눈이 머물렀다. 옆에서 동생이 조용히 말한다.
언니, 난 솔직히
엄마 아빠가 노후 준비만 되어있어도
여행도 좀 더 자주 가고
저런 것도 한 두 개쯤 사면서 살 것 같아.
엄마 아빠는 아직까지 집도 없으면서
우리 보고 걱정 말고 시집이나 가라는 거 보면
참 배짱도 좋아.
맞다. 우리가 오랫동안 공유해온 이 불안은 당장은 아니어도 (심지어 지금 엄빠가 사시는 집에 얹혀살고 있으면서) 언젠가 부모님의 거처와 노후를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엄마 아빠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 부모님이 희생해온 삶을 알면서 어떻게 생각을 아니할 수 있겠는가. 수저 없다며 원망할 나이도 시기도 지났고, 아직 드린 것도 없다.
동생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열심히 모아서 투자하는 직장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김이나 님 말처럼 우리의 콤플렉스가 언젠가 우리 나름의 멋진 결이 될 거야.
너는 패셔너블한 직장인 투자자.
나는 글쓰는 취미 부자 직장인 투자자.
서울에 집 여러 채 사야지. 엄마 아빠 꺼, 네꺼, 내 거. 이번주도 열심히 벌고, 다음 주에는 꼭 임장 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