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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11. 2022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불안했습니다. 그 불안한 마음에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도 먹어보았고, 술잔도 수없이 채우고 비웠죠.


여전히 텅 비고 떨리는 마음을 채우려고 이것저것 참 많이도 시도했습니다. 공부, 아르바이트, 산책, 팟캐스트. 저 자신에 빈 틈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그러다 너무 지치면 방에 처박혀 가만히 누워 소설이나 영화, 유튜브, 웹툰, 다른 사람의 브런치 글을 욱여넣으며 결국 또 가만히 있지를 못했어요.


어두컴컴함 방에서 욕과 후회와 걱정으로 점철된 일기를 이어나가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안개 같은 두려움을 써 내려가며 구체화하다 보면 조금은 살 것 같았거든요. 그 마저도 공개적인 공간에 쓰는 게 막연히 두렵기도 하고, 자신도 없어서 발행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날 것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기가 꽤 창피하고 수치스러웠습니다.




얼마 전에 저와 불안의 농도가 비슷한 친구와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 보았어요. 끊임없이 시선이 외부로 향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없는 눈치를 만들어서 보고 주변 사람들의 작은 언행을 확대해서 해석하는 여자 주인공이 마치 나를 닮아서 속상했어요.


자신에 대한 이유 없는 절망과 자신 없음이, 그래서 자꾸만 남편이나 상상 속의 존재에게 매달리고야 마는 그녀가 가여우면서도 답답했어요. 잘하고 있다고 확인받아야만 존재할  있는 사람. 그게  같아서요.


함께 영화를  친구는 주인공이  대신 남편과 아이 곁에서 안정을 찾는 결말이라고 해석했어요. 저는  영화의 결말이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 결국 자신이 쓰던 이야기를 완성해냈다고 믿고 싶어요. 아마  자신을 깊게 투영했기 때문이겠죠.




여기, 영화 밖 여전히 불안한 내가   있는 이야기 무엇이 있을까요.


혁신과 변화의 이면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인간 착취와 낙인찍기. 결국 어떤 사회에서라도 겪을 수밖에 없는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가 될까요.


아니면, 무한히 반복하는 착취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이어지는 보통 사람들의 한탄이 될까요.


작년 십일월부터 꾸준히 토하고, 머리와 마음을 뜯으며 써내려 간 이야기가 결국 어디로 흐르게 될지 모르겠어요.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담담한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질문이 될 수 있을지. 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위로와 질문을 나 자신이 몽땅 받는대도 말이에요. 그래도 지난 십일월보다는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을 보면, 언젠가는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고 꺼내고 다듬어 완성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희미한 희망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해요. 조금씩 다를 뿐 같아 보이는 이야기가 선명하게 와닿는 날이 선물처럼 찾아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때까지 지치더라도 계속해서 이렇게 저렇게 써보겠습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쓰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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