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Aug 24. 2022

마음에 작은 공간이 생겼다

곳간은 여전히 비어있는데

살면서 한 번도 쫓기지 않은 적이 없다. 여유라는 단어를 잠시라도 가져본 적도 없다. 줄곧 시험, 입시, 취업, 생활비, 평가, 인정 따위의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모습을 한 두려움과 공포와 싸웠다. 명절이면 바리바리 교과서를 챙겨가고, 어쩌다 빨강 날이 있으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던 약속을 캘린더에 켜켜이 쌓았다.


그런데 내게도 아주 작은 여유가 생겼다. 당장 오늘이 아니라 다음도 괜찮다는 마음, 이번에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마음, 설령 실패한다 해도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많은 나이까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상상. '죽고 싶다.'는 말조차 압박처럼 느껴져 대신 '그만 살고 싶다.'라고 말하던 나에겐 꽤나 놀랍고도 큰 변화이다.


왜 때문일까? 자주 힘을 내보다가도 이내 무기력하게 축 늘어지던 나였는데. 사회 구조는 바뀌지 않을 거고, 내 위치는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왔기에 세상에 마지막 남은 비관론자처럼 굴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회사를 옮겼다. 첫 번째 회사는 3개월도 되지 않아 '이게 뭐꼬' 싶었고, 화장실이 깨끗한 덕분에 2년 반을 울면서 버텼다. 내가 속한 사업부가 망하기 전에 뛰어든 구명보트 같은 두 번째 회사는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부터 쎄했다. 첫 출근 하고 역시는 역시라며 자조했지만, 그 사이 좀 강해진 건지 화장실에 덜 자주 가면서 2년을 꾸역꾸역 버텼다.


덕분에 커리어는 모르겠고, 맷집은 얻었다. 그리고 당장 내년에 사업을 접지는 않을 것 같은 안전한(?) 세 번째 직장에 안착했다.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최소 10년은 월급이 따박따박 나올 것 같은 직장.


사실 이전에 다녔던 회사들도 아직 월급 밀렸다는 이야기는 안 들리는 것 보니 나의 불안이 과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늘 업무가 바뀌고, 하던 일이 엎어지고, 당장 하루를 쳐내고, 변명하기에 바빴다. 늘 생존에 위협을 느꼈다. 너무 많은 사업이 실패하고 있어서, 나까지 실험하고 실패할 여력 따위는 없었고. (어쩌면 이것도 연예인 걱정 같은 괜한 사장님 걱정이었을 지도.) 연간, 반기, 분기, 주간 계획은 세우나 마나이니 커리어는커녕 그저 무력해졌다.


(이번 회사라고 얼마나 다르겠느냐만은) 지금까지 5개월을 돌아보면 확실히 전 직장들보다 안정성은 물론이고, 자유도가 높다. 업무 범위도, 전략도, 액션 아이템도, 예산도, 설득도 모두 내가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내 실력이 쌓이고 조직 내에서 신뢰도 쌓여 운신의 폭이 좀 더 넓어진다면 회사 생활이 좀 더 재미있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이 정도의 안전감과 운신의 폭만 주어져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아직 새로운 곳의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이 보이는 기간이라 그런 걸까? 그것도 아니면 흐르는 시간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걸까?


고생 끝에 낙이 왔다는 되지도 않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이제 와서 뒤 돌아봐도 내가 겪어온 일들은 별 일이었다. 버티기 힘든 날들이었다. 타고난 예민한 기질과 자아실현 욕구,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의 불온전한 관계, 청소년기에 갑자기 들이닥친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 한국 사회와 내가 속했던 조직의 폐쇄성, 낮은 임금과 불안한 업무 환경. 감당하기에 너무 빠른 변화의 속도. 영원할 것 같던 관계의 소멸.


누구의 인생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확실히 힘들고 불안했다. 지금이라면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당장의 어려움 그 이상을 생각하고 꿈꾸기에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아니다. 지금이라도, 누구라도 힘들었을 거다. 내 의지와 주변의 도움, 그리고 행운이 따라주었기에 직장을 포함해서 많은 부분이 해결되었다. 그러니 이제서라도 오늘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을 꿈꿀 수 있게 된 거 아닐까.


운이 조금이라도 나빴다면 버티기 쉽지 않았을 거다. 끝을 모르고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남아서 진심으로 안도하지만, 뛸 듯이 기쁘지는 않다. 감사하지만 지금도 울고 있는 나와 닮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남느라 애쓰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헝거게임이 생각난다.




먹고살려고가 아니라 잘 살아보려고. 지금까지 날 움직이게 했던 에너지의 원천은 늘 결핍과 가지지 못한 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아주 약간의 경제적,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고 생존 욕구가 충족되니 조금은 다른 방향의 n잡, 사이드 프로젝트가 하고 싶어 진다. 세상에 맞춰 뭔가를 내놓기보다는 (이건 회사에서 많이 하니까) 이미 내가 가진 이야기와 몰입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모으고 싶어졌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살아남는 과정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생계형 N잡 말고, 자아실현형 사이드 프로젝트.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를 일이니까, 또 언제 어떻게 생계형으로 바뀔지 모른다. 그래도 당분간은 이 사치스러운 자아실현 욕구를 온전히 누려보기로 한다.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사람이 그렇게 쉽게 굶어 죽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으니까. 어떻게든 수습하면 되니까. 꼭 돈 되는 일 아니어도 지금은 괜찮다.


그렇다고 대단히 달라질 건 없겠지만 이전과 하고 싶은 게 같지 않은 건 확실하다. 그동안 모호하게 품고 있었던 ‘위로와 힘이 동시에 필요한 날들의 이야기’. 이제는 하나씩 정리하며 꺼내봐도 좋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