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Aug 30. 2022

일상이 자꾸만 지루해져서

이게 아닌데 내 맘은 이게 아닌데

사람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지난 4년을, 아니 어쩌면 평생을 안정적인 삶을 쫓아왔는데, 막상 쫓기지 않는 시간이 생기자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저 누워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만 늘어날 뿐. 여유가 생겨도 온전히 누리지를 못하니.


먹고살기 위해 노동이 필수적인 내게 이런 여유가 영원히 주어지지 않을 것을 안다. 그래서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 하나는 '세상에 영원한 게 없으니, 살아남기 위해 뭐든 힘들게 대비해야지.'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앞으로도 모든 것이 충족되는 때는 오지 않을 텐데, 그냥 좀 나른하게 두면 어떤가.'이다.


요즘은 삶이 좀 애매하게 간절해져서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당장 모으고 갚아야 할 빚이 얼마인데, 왜 이렇게 족쇄가 헐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기엔 내 멘탈이 못 버틸 것을 아니까 안전하게 원화 채굴이나 해야지 뭐. 이런 주제 파악(?)이 되어버려서일까.


어쩌면 회사에서 너무 큰 자유를 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목표 의식도, 루티너리하게 나아가는 능력도 부족한 내게 너무 과분한 건 아닌가. 아니 언제 이렇게 관리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 된 거지? 그냥 나이를 먹고 직장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당장 욕먹고, 잘리지 않을 만큼만 하면 되지 뭐. 내가 뭐 피해 준 것도 아닌데. (라고 쓰면서 아직은 밥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든다.)


이 애매하게 불편한 마음이 참 싫다.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쉬는 것도 아닌. 마치 시험을 2-3주 앞둔 중위권 학생의 애매한 심리 상태. 학창 시절에도 늘 그랬던 것 같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앞두고 약속도 잡지 않고 공부해야겠다는 강박과 불안에 시달리면서 정작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차라리 진짜 걱정 없이 노는 타입이라면, 아 그럼 이런 글도 안 쓰고 있겠구나. 그래 이왕 걱정할 거 그냥 열심히 사는 것은 어떤가 생각하면 또 하고 싶은 게 없고, 체력도 달리고, 저축하고 남은 돈이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주관적으로) 부족하고, 집이 재택 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고... 참 핑계가 많아진다.


안정감과 변화, 그 사이 어떤 지점에 존재할 수는 없을까. 내가 원했던 안정이 알람 없이 일어나는 아침과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 커피 머신이 위이잉하고 편하게 내려주는 아메리카노, 느지막이 침대에 빔백을 놓고 적당히 일하고 돈을 버는. 하루에 천 보도 걷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핸드폰이나 보다가. 죄책감을 덜기 위해 저녁 요가를 하고, 돈 내고 땀 흘린 거로 그래도 오늘 운동 완료~라고 자위하며 새벽 두 시까지 다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9시간씩 늘어져서 자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매일 같이 회사에서 삼시 세끼 해결하고, 엉덩이에 종양이 생길 만큼 앉아 있거나 눈 커플이 떨릴 만큼 잠을 못 자는 삶을 꿈꾼 것도 아니지만 지금처럼 무료함으로 가득 찬, 휴식이라고 자위하며 게으르게 반복되는 일상을 꿈꾼 것도 아니다. 적어도 회사든, 회사 밖이든 내가 몰입하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한 가지는 붙들고 살고 싶다. 아마도 내가 원했던 건 '천천히 변화하되' 안정적인 삶이었나보다.


너무 열심히도 싫지만 너무 잔잔하기도 싫어서. 적당한 목표 지점을 다시 생각해본다. 회사 생활은 아직 잘 모르겠으니, 일단 그나마 나를 무력감에서 끄집어 올려주는 요가. 요가 지도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냥 시간이 남으니 큰돈과 시간을 들여 자격증이라도 따둘까 하는 마음은 넣어둔다. 대신 적어도 이틀에 한 번, 하루에 두 시간씩 수련하기. 선생님이랑 이야기해서 아쉬탕가 마이솔 진도 목표 세우고, 정해둔 기한 내에 다 받기. 지도자 과정은 그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기.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잘하고 싶었던 것. 내 안의 이야기 끄집어내기. 언젠가 자전적인 소설이나 미술 관련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가 되겠다던 애매한 목표를 지운다. 당장 쓸 이야기가 없어도, 좋은 평가로 이어지지 않아도 일주일에 가볍게나마 두 편 이상 글을 완성해내는 습관 들이기. 좋은 기획력, 시선을 끄는 법보다 지금은 그저 꾸준하게 생산하는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하기. 2017년부터 꾸준히 해오던 월간 회고도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남겨보기.


당장 일상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이 모호함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쓰고 채우고 견디다보면 언젠가 내게 맞는 변화의 속도와 내게 필요한 안정적인 기반이 동반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익숙하지 않은 낙관론을 펼쳐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