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아끼다가 쓰는 법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팔 월은 지출이 많은 달이었습니다. 아버지 환갑에, 가까운 친구의 생일, 각종 모임과 약속까지. 오랜만에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았어요. 가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기분은 좋았지만. 본 투 비 짠순이, 쫄보인 저는 한 달 내내 잔고를 보며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나를 위한 지출은 최소화했죠.
그리고 월급날보다 더 기다렸던 대망의 9월 1일! 드디어 150만 원이 훌쩍 넘었던 신용카드 '이번 달 결제 예정 금액'이 0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유후! 이제 돈 좀 써볼까? 했는데,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난달에 하고 싶었던 일, 사고 싶었던 걸 써둘 걸 그랬습니다.
예산과 이런저런 이유로 욕망을 미루다 보니 어느새 위시리스트가 텅 - 비어버렸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이 날 때마다 끄적여두었던 메모장과 지금까지 지출 내역을 보니, 생각보다 특별한 게 없습니다. 요가를 좀 더 깊게 파고들고, 글을 좀 더 꾸준히 쓰고 싶다는 정도?
너무 오랫동안 미용을 위한 쇼핑을 하지 않은 탓인지, 이제 어디에서 뭘 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십 대 여성에게 적당한 쇼핑몰은 어디인가. 자라와 올리브영이 그나마 제일 편하게 느껴집니다. 곧 블랙 프라이데이기도 하니, 해외 직구 사이트나 한번 살펴봐도 이제 명품이 너무 흔해져 별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우아하고 간지 나는 삼십 대가 되고 싶었는데, 생에 첫 명품백은 아마 올해도 사지 못할(?) 것 같아요.
연비 좋은 사람이 된 걸까요? 부모님 댁에 얹혀살기도 하고, 이직한 회사에서는 밥과 커피도 주니 사실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습니다. 한 달에 십만 원 남짓하는 교통비와 알뜰폰 통신비. 쉬는 날에 가까운 사람들과 적당히 맛난 걸 먹으며 쓰는 돈. 가끔 있는 경조사 비.
그나마 좀 더 쓰는 게 있다면, 두세 달에 한 번씩 나가는 요가원 등록비와 올 초 다니기 시작한 화실 등록비.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주변을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주거 형태에 따라 생활비가 조금 더 드는 친구도 있고, 값비싼 자동차나 취미생활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한 두 가지 정도를 제외하면 시간을 쓰는 방식도, 돈을 쓰는 방식도 대부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시리스트가 비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시간을 쓰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돈을 쓰는 곳도 바뀐 것 같아요.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혼자서 여기저기 다니며 문화생활을 즐기던 시절에는 밥값과 커피(가끔의 술) 값은 줄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혼자 있을 때는 물 한 병 사 먹는 것도 죄책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코로나 덕분인가, 나이가 들어서인가.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요즘은 배가 고프면 가까운 식당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시켜 먹습니다. 대신 카페에 쓰는 돈은 많이 줄었네요.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소파에 기대 글을 씁니다. 가끔 간이 요가 매트를 깔고 홀로 머리 서기 동작 연습도 해보고요.
아, 이제 쇼핑 위시리스트 대신 시간 장바구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돈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는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바뀌는 것 같거든요. 꽤 오랫동안 그저 막연하게 '돈이 많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위시리스트가 비어버리니 참.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은 요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끔 부모님 체면 차려드리고, 친구들 서운해하지 않을 정도의 비상금 정도는 필요하겠지만요. 돈보다는 여유 시간이 생길 때 뭘 할지를 적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