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Nov 26. 2022

삶에 다시 미술이 필요한 날에

나오시마 여행기 (1) - 지중미술관과 이우환미술관

회사를 세 개 다녔는데, 세 번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운명이의 제안으로 나오시마에 다녀왔다. 올해 이직하면서 미국도 길게 다녀오고 해서 딱히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운명이의 리드 하에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비행기 티켓이 날아왔고, 시간도 날아가서 어느새 졸린 눈을 비비며 짐을 싸고 있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에, 여행지에 절대로 치마와 불편한 신발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나만의 룰을 깨고 한껏 꾸몄다.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네시에 번떡 눈을 뜨다니. 이게 가능하다니.


9호선 첫 급행열차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 기절했다가 눈 떠보니 오사카 간사이 공항이다. 다시 기차 타고 오카야마로 이동, 근처에 구라시키를 둘러보고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타카마쓰에 짐을 풀었다.

끝난 줄 알았지? 마치 군대온 것처럼 다음날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통통배를 타고 나오시마에 입도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무늬로 뒤덮인 마을버스 한번, 미술관까지 운행하는 재단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서야 뮤지엄 산 이후 그토록 궁금했던 안도 타다오의 지중 미술관에 도착했다.


지중미술관

지중 미술관에서 산 엽서

장장 30시간의 여정이라니. 혼자였다면 이미 오사카에서 포기했을 코스… 아니다 애초에 출발을 안 했겠구나? 하지만 배려심, 계획성, 체력 삼박자를 고루 갖춘 운명이 덕분에 나는 내 몸뚱이 하나만 건사하며 편하게 여기까지 왔다. 어차피 촬영이 어려운 곳이라 카메라도 라커에 넣었는데


앗? 촬영 가능한 공간이 있다. 카메라를 가지러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핸드폰도 좋으니까~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도 타다오의 콘크리트 건물을 흑백으로 가르며 쏟아지는 햇살을 만났다.

완벽한 햇살 속에서 자연의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땅 속에 지어졌지만, 모든 작품을 자연광을 통해 관람하게 설계된 신박한 이곳에서 두 시간 내내 나는 “아 기대 이상이다.” “여긴 작품이 아니라 경험이구나.” “해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작품을 떠나고 싶지 않다.” 는 말을 남발했다.


이우환미술관

하지만, 나오시마에서 1박 2일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를 뒤로 하고 안도 타다오가 친구 이우환을 위해 지은 다음 미술관으로 출발했다. 버스에서 분명 우퐌이래서 내렸는데, 길 위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었다. 도저히가 입구를 찾을 수가 없는 곳. 구글맵을 들고 몸을 360도씩 돌리면서 겨우 수풀 속에 찾아 내려간 계단에 끝에는, 와우.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드넓은 공터에 존재하는 이우환의 작품들. 역시 미술관도 입지 불패인가. 부산 시립 미술관의 이우환 공간도 참 좋았지만, 해외라서 더 그런지 저 멀리 낭만 있는 캠핑카 덕분인지 그가 늘 이야기하는 ‘관계’ 속에 벌러덩 드러누운 기분이었다.

실제로 들판에 한번 누우니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지만, 운명이 손에 이끌려 친구가 친구를 위해 지은 미술관 내부로 입장. 역시나 이곳도 촬영은 금지되어있다. 들어갈 때와 들어선 뒤, 다시 돌아 나올 때 분명 같은 돌이고 그림인데, 다르게 느껴지는 걸 보고 아 이래서 거 장인 거냐며 지친 상태로 또 놀라고.


갑자기 혈중 미술 농도 쭉 올라가버린 나는 이 섬에 처음 세워진 미술관이자 우리가 가지 않은 마지막 미술관인 베네사 뮤지엄도 가보자고 제안하는데…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우리는 부산으로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