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 여행기 (4) - 집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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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의 집 프로젝트는 어찌 보면 꽤나 상투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도시화, 산업화로 사람은 떠나고 쓰레기만 남은 작은 섬 마을에 출판, 교육 사업으로 큰돈을 번 베네세 기업의 총수가 온다.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이자 돈 있는 자만 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의 일환으로 섬 곳곳에 미술관도 세우고, 조각품도 전시하고, 지역 사회의 빈 집을 사들여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키는데...
부잣집의 예술을 통한 지역 사회 활성화랄까. 어째 교과서에서 많이 본 느낌이다. 여러서부터 이런 '명분'에 왜인지 거부감이 있는 나로서는 (그래서 위화도 회군 때문에 이성계도 싫어하는 어쩔 수 없는 반골) 집 프로젝트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시니컬 한 마음은 첫 번째 집에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과거 소금 장사로 부유했던 이시바시 가문의 집을 개조했다고 한다. 영어로 쓰인 짧은 소개글에는 집 벽면에 히로시 센쥬가 2006년에 그린 폭포 그림이 있고, 옻칠을 한 바닥에 자연광에 반사된 그림이 비춰 생동감을 더했다는 이야기가 쓰여있었다.
어렵게 부츠를 벗고 집안에 들어섰는데, 폭포는 검은 산을 닮았고 바닥은 생각보다 덜 반딱거려서 오잉...? 이게 맞나? 했지만 '작품 앞을 대나무로 막아둔 걸 보니 이게 폭포인가 보다! 보다 보니 꽤 멋진 것 같기도? 그나저나 마루에 비치는 햇살 참 좋네. 여기 좀 앉아서 광합성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접고 다음 집을 향해 신발을 신으려는데
안내인 할아버지가 따라오라고 하신다. 그를 따라 코너를 돌자 캄캄한 방에 유화와 아크릴로 쏟아지는 진짜 폭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 덕분에 바닥까지 물이 튀는 것 같았다.
대학 시절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에서 처음으로 클림트의 키스를 볼 때에 버금가는 감동이었다. 반골이니 홍대병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던 나는 누구보다 상투적인 감탄사를 남발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고,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감동을 어떻게든 남겨보겠다고 낑낑거렸다.
여섯 개의 집이 꽤 가깝게 위치하고 있어 한 시간 반이면 후루룩 다 볼 줄 알았는데, 이시바시 가의 뒷마당을 돌아 나오니 세 번째로 가려고 했던 미나미데라 (Minamidera) 입장 시간 10분 전이다. 허겁지겁 군화 같은 장화를 고쳐 신고 벌써 수번은 지나쳤던 건물 앞에 도착했다.
안도 타다오가 지은 검은색 목조 건물에 줄을 서 입장하면, 제임스 터렐이 어둠과 빛을 활용해 설치한 작품 <Backside of Moon>을 경험할 수 있다. 터렐의 작품을 원주 뮤지엄 산에서도, 제주도 본태 미술관에서도, 하루 전 지중미술관에서도 몇 번 경험해서 그런가. 아니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로만 진행되는 안내가 나를 불안하게 했나. 관람 프로그램 종료와 동시에 그곳을 벗어났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탄수화물과 카페인을 조금 섭취하고, 두 번째 집을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구글맵은 우리를 외딴 절벽에 데려다 두었고, 스타트업에서 맷집만 세진 우리는 굴하지 않고 산을 타고 올라와 이 사원에 도착했다.
한눈에 유리 계단이 보였고, 잠깐 왕좌의 게임 이미지가 스쳐갔지만 아무래도 어쩐지 일본식 사원은 찝찝하다. 그렇다고 연좌제를 적용할 수는 없지. 이곳에도 다른 집들처럼 연세가 꽤 있으신 일본 할아버지 한 분이 도장을 들고 우리를 반겨주셨다. 그리고는 아주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 분이세요? 여기 사원 천천히 둘러보시고 말씀해주세요. 아래에 석관을 보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비질을 하시는 게 아닌가.
바로 전 미나미데라에서 일본말에 멀미하다 온 사람으로서 어찌 저 친절에 화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레시까지 ㅂ하나 받아 들고 탄광 체험하듯 계단을 내려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운명이는 겁이 많은 편인가? 다음엔 내가 앞장서야지.) 야외에서 보았던 유리 계단이 지하까지 길게 이어져내려오고 있었다. 정말 왕좌의 게임 스타크 가문 지하 무덤 같았달까.
그리고 뒤를 돌았을 때, 저 멀리 바다가 석관 내벽 양옆으로 반사되는 모습은 그야말로 건축과 자연이 만들어 낸 한 폭의 미술 작품이었다. (아우, 이 빈약한 표현력을 어쩐담.)
바다를 한참 바라봤다. 할아버지에게 한국말 너무 잘하신다며 소심한 인사를 전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하지만, 어제도 이야기했듯이 하루에 미술관은 2.5개가 최대다. 받을 수 있는 감동도, 기억할 수 있는 숫자도 그 정도인 것 같다. 그렇지만 또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지. (아니 왜?)
마을로 내려와 이번에는 지어진 순서 상 집 프로젝트의 첫 번째인 카도야 (Kadoya)를 살펴봤다. 리움 미술관 입구에도 있는 미야지마 다쓰오의 디지털 카운터로 구성된 작품 <sea of time>은 진정한 의미의 참여형 작품이다. 작가는 1998년에 다섯 살부터 아흔 살까지 마을 주민들에게 숫자가 바뀌는 속도를 각자 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그래서 집안에 채워진 물 위에 떠 있는 LED 숫자판이 제 각각의 속도로 돌아간다. 나는 콘텐츠 제작할 때 이제야 '인터렉션'을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무려 20년도 전부터 예술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다니. 하지만 역시나 부츠를 벗었다 신다가 돌아버릴 뻔했다.
이제 입장권에 도장을 다 찍기 위해서라도 곧장 운명이가 "방 안에 생화는 하나도 없다. 이 집에 살아있는 식물은 마당에 동백나무뿐이다!"라고 스포 해버린 나무 조각 꽃으로 가득 찬 고카이쇼 (GoKaisho), 그리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 골동품 모으는 아저씨로 나오는 사람이 살 법한 마지막 집 하이샤 (Haisha)까지 빠르게 둘러봤다.
물론 도장을 다 채웠다고 해도 마을에 버스 노선은 하나뿐이고, 육지로 돌아가는 배편도 없어 내 마음대로 빠르게 돌아올 수는 없었지만.
운명이와 함께가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나오시마 섬, 이곳에서의 1박 2일이 얼마나 많은 순간을 남겨주었는지. 잊고 있던 미술에 대한 애정도,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의 경험도, 소소하게 이야기하고 웃던 순간도 모두 다 꽉꽉 채워서 싸들고 저녁 배에 올랐다. 해가 떨어진다. 이 석양이 나오시마의 마지막 작품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