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 여행기 (3) - 여행 속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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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짐부터 덜자고 숙소 근처에서 내렸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생경한 분위기의 작은 마을과 골목. 운명이 말에 의하면 아마 가로수와 가로등, 천장이 낮아서 더 낯설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지는 거라고 했다.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이 쪽에 뭐가 있을까?' 싶은 곳에 우리(라고 쓰고 운명이)가 예약한 민박집이 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일본식 시골집의 모습 그대로.
세월의 떼가 탄 목조 건물. 신을 벗고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다. 가정집을 개조한 모양인데, 일본은 가정집도 닷지형 식탁을 쓰는 건가? 아무튼 바 테이블 같은 곳에 앉아서 할아버지에게 여권도 보여드리고, 저녁에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영업시간을 잘 살펴보라며 하나씩 표시해주신 지도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좁은 통로를 지나 우리가 하루 동안 머물게 될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열쇠를 넣고 누르며 돌리자 미닫이 문이 덜컥 열렸고 다정하게도 이불 두 채에 각각 전기장판이 깔려 있다.
아직도 일본식 숙박시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는데, 서양 및 한국 호텔에서 죽어도 주는 물 2병은 대도시 호텔이 아니면 찾아볼 수가 없고, 아무리 민박이라도 잠옷은 꼭 제공한다. 문화의 차이인지, 내 좁은 경험의 특수성인지 알 수는 없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일본 올 때마다 냉장고와 옷장부터 열어 확인하게 될 것 같다.
잠깐 휴대폰 충전도 할 겸 불 난 다리도 식힐 겸 전기장판으로 기어들어갔다. 역시나 혼자였으면 그대로 미적거렸지만, 운명이가 있어서 약간 한없이 늘어지지는 않게 된달까? 휴대폰 배터리도, 다리 상태도 적당히 충전되자 우리는 민박집 할아버지가 저녁 장사한다고 알려주신 식당 중 구글에서 별점도 높은 곳을 향해 다시 부츠를 신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다섯 시 반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새카만 어둠이었고 할아버지와 구글 모두가 영업 중일 거라고 이야기했던 식당 세네 개가 모두 닫혀 있었다. 암흑 속에서 숨겨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꼬르륵 소리. 하루 종일 안 먹었다고 하기엔 뭐하지만, 간단하게 먹고 마시며 미술관 세 개를 추파 한 우리로서는 이제 먹어야 했다. 그리고 이 작은 마을을 뺑뺑 돌아 불이 켜져 있는 단 하나의 이름 모를 식당에 들어섰다.
원래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곳은 대체로 맛집이다. 분위기도, 음식도, 서비스도 빠질 것 없는 곳에서 우리의 밤은 가라아케와 생맥주로 시작해서 영업 마감한다는 직원의 멋쩍은 웃음으로 끝났다.
다음날. 차가운 공기 속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붕어빵처럼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알람도 없이 눈이 떠졌다. 한국에서는 아침에 눈 뜨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데, 어쩌다 다시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는가. 방음이 되지 않아 옆방 아가들의 깔깔거리는 소리 덕분인가, 시골이라 하루가 빨리 시작하기 때문인가, 역삼이 아니라 다른 목적지가 있기 때문인가.
원래는 다른 박물관을 보기 위해 나오시마 섬 옆 테시마 섬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배편이 마땅치 않아 취소하고 오늘은 나오시마에서 여유를 좀 즐기기로 했다. 분명 모닝커피를 마실 때까지만 해도, '집 프로젝트는 실망했다는 후기가 많더라...'라며 애매해하던 예은과 말은 안 했지만 이런 거국적인 공공 참여형 프로젝트에 관심이 전혀 없는 나. 둘 다 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마을이 너무 작아서 걷다 보니 집 프로젝트의 매표소였고, “그래 뭐~ 여기까지 왔는데…” 하다가 정신 차리니 티켓이 우리 손에 들려 있었고, 왔던 길을 되돌아 걷다 보니 첫 번째 집에 도착했다.